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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의 「유엔총회」/박정수(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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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의 「유엔총회」/박정수(메아리)

입력
1994.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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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제재 안보리결의안 채택이 임박한 유엔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그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북핵문제는 한반도 전쟁위기설로 과장돼 지구촌을 풍미하고 있어 유엔제재의 향방은 더욱 관심거리다. 북한은 그런 와중에 「불바다」니 「선전포고」니 호전적인 용어를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우리의 민족성이 도대체 세계에 어떻게 인상 지워질지, 생각만 해도 손에 땀이 절로 난다.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룰 즈음인 1천3백여년전, 중국의 태산에서 「유엔총회」가 열린적이 있었다. 서기 666년 정월, 당나라 3대 고종이 개국후 최초로 태산에서 천제와 지신에 천하태평과 국가흥왕을 비는 봉선대전을 치를 때였다. 고종은 전례 없이 신라·고구려·백제를 비롯하여 일본·돌궐·우전·인도· 페르시아의 사신까지 초청해 의식의 위의와 장엄함을 더하게 했다. 아마 인류의 최초였을 「유엔총회」가 봉선을 빌려 열린 셈이다. 

 그때 한반도의 상황은 극도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백제는 앞서 660년 역년 6백78년만에 나당연합군에 항복했다. 봉선의식에는 그 유신이 참석했을 것이다. 고구려도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7백5년을 이어온 국호를 역사속에 묻어야 했다. 태산에서 맞닥뜨린 우리의 선조들은 저마다의 표정과 심정이 어떠했을까. 각국의 사신들은 동족상잔하는 우리민족에게 시종 싸늘한 눈총을 보냈을까. 전투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전사자가 났을까. 기록은 종전후 백제에서 1만3천명, 고구려에서 20만명의 백성이 중국으로 잡혀갔다고만 밝히고 있다. 통일을 위해 바친 대가는 그토록 엄청나고 쓰라렸던 것이다. 

 전쟁 얘기가 나왔으니 그 참혹상을 영웅찬 전쟁송의 대로망 삼국지를 통해 한번 살펴보자. 기록에 의하면 서기 263년 척에서 실시한 호구조사 결과 인구는 대갑장병 10만2천·벼슬아치 4만에 남녀백성 94만이었다. 같은해 위의 인구는 4백43만, 280년 오는 2백30만 이었다. 삼국을 다 합해야 8백만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삼국분립 직전인 후한말의 센서스를 보면 5천6백여만명에 달했다. 전쟁의 고초가 얼마나 진절머리 칠 정도였던지 인구마저 7분의 1이하로 격감했던 것이다.

 우리는 삼국통일 이래 1천3백여년 만에 분단된 국토를 이제 다시 통일 해야 한다는 민족사적 소명을 목전에 맞고 있다. 남북통일의 과정은 핵위기를 슬기롭게 넘기고, 국력의 절대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무혈로 이뤄져야 한다는게 대다수 국민의 소망이다. 또다시 1천3백여년이 흐른후 후손들도 오늘날의 일들을 되새겨 볼 것이다. 

 그 후손들이 20세기 말을 산 선조들이야 말로 용감하고 지혜로웠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과연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좋을지 한번쯤은 깊이 자문자답 해 봄직도 할것이다.<통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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