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물질전용 검증보장없인 회담 무의미/“미 강경선회 북핵보유 확인때문” 분석도 북한의 김영남외교부장이 고위급회담을 전제조건으로 북핵시설에 대한 사찰허용의사를 밝힌데 대한 미국정부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미국무부는 8일저녁(현지시간) 이날 낮 정례브리핑에서 밝힌 논평과는 별도로 북한의 제의를 정면으로 일축하는 추가논평을 내놓았다.김외교부장의 제의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며 북한은 이미 「돌아올수 없는 한계선을 넘어 버렸다」는 것이다. 국무부 당국자는 『미국정부는 협상에 의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 왔지만 대화의 기초를 재구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북한에 달려있으며 이번제의는 그러한 조건에 훨씬 미달되는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북한이 핵물질을 전용했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회보장이 곧 대화지속의 기초라고 강조해온 미국의 입장에서 이른바 「대화의 기초」에 대한 구체적인 복원의사가 불분명한 이번제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해석인 셈이다.김부장의 제의는 3단계고위급회담을 우선 열어 핵문제를 일괄타결하자는 종전의 주장에서 한치도 진전된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실제로 5㎿원자로의 연료봉인출작업이 모두 끝난 마당에서 대화의 기초를 새로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변 핵폐기물저장소에 대해 특별사찰을 실시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고있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배수진으로 1년여동안 핵곡예를 벌여온 출발점이 다름아닌 이 특별사찰요구였던만큼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점도 미국은 잘 알고 있다.
미국이 유엔제재라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한의 핵보유 저지라는 미국의 정책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한 막다른 해법으로 제재라는 봉쇄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핵개발포기의 대가로 북한에 대해 경제원조와 사회개방을 맞바꾸려했던 미국이 역으로 경제봉쇄와 고립을 통한 옥죄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CNN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대북제재 찬성이 80%,반대가 13%로 나타났으며 북한의 핵시설을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주장도 찬성이 46%, 반대가 40%로 각각 나타났다. 이쯤되면 미국조야의 목소리가 매파의 강경논리로 바뀌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다만 워싱턴의 일부 외교전략가들은 미국이 최근 강경기조로 변하는 과정을 보고 한가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예컨대 「연료봉 사찰」기회가 무산됐다고 해서 곧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제재조치를 구체화시키는 것은 다소 성급하지 않느냐는 시각이다. 즉,미국이 최근 북한의 「핵무기보유 사실」을 어떤 형태로든 확인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그것이며 그랬을 경우 그야말로 작금의 핵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당초 『「연료봉사찰」이 고위급회담의 「전제조건」은 아니다』라고 했던 미국이 갑자기 「전제」라는 표현을 공식논평에서 쓰게된 배경도 이같은 의구심을 부풀리는 대목이다.
이와는 별개로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궁지에 몰린 나머지 자기들이 「핵무기 보유국」임을 스스로 선언해 버리는 경우도 상정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경우 북한은 「핵주권국가」로서 이른바 NPT회원국 지위는 남아있다해도 사찰의무는 자동소멸된다. 이에대해 과연 유엔 안보리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돼버리고 만다. 바로 이같은 극단적인 가능성을 나름대로 염두에 두면서 미국이 제재실행준비에 돌입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워싱턴=정진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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