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밀월·대북국제공조 견제/4강이해 득실 고려 “줄타기”도 우크라이나를 방문중인 김영남북한외교부장의 러시아가 제안한 북핵관련 「다자간 회의」수용검토발언과 우크라이나와의 핵관련 제휴가능성 타진등은 북한특유의 시간벌기전략과 역공세술수의 하나로 해석된다.
북한이 유엔의 제재가능성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외교부장을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의 「도전국」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에 파견한 것이나 김부장이 여기서 러시아가 제안한 다자회담의 수용검토 발언등은 고도로 계산된 외교적 술수일 가능성이 높다고 모스크바의 서방 외교소식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이 보유했던 핵무기중 상당수를 아직도 보유하고 있는 세계3위의 핵강국이며 그동안 이 핵무기의 해체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와 실랑이를 벌여왔다.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당근과 채찍」전략을 구사하며 압력을 가하다가 올2월께 레오니드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대통령을 설득, 모스크바에서 빌 클린턴미대통령과 보리스 옐친러시아대통령등 3자가 만나 전략핵미사일해체에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민족세력등 보수파들은 핵무기보유를 주장하고 있으며 NPT체제 가입유보주장을 펴는등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아직도 핵무기를 완전해체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북한이 현재 핵문제에 있어 우크라이나와 공동보조를 취할 의사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 시기에 외교부장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했다는 사실자체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독자적 핵개발능력은 물론 미사일까지 보유하고 있어 러시아의 두통거리인데다 같은 슬라브민족인 러시아를 제쳐두고 대미협상을 벌여 대규모 경제원조를 얻어내는 핵외교 전략을 구사, 미국과 러시아를 함께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북한은 이같은 점에서 묘한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북한은 국제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핵무기개발정책을 계속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외교부장의 이번 『미국이 북한처럼 순종하지 않는 국가들에는 압력과 제재를 가하고 우호적인 국가의 핵개발은 눈감아주는등 이중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발언에서 우크라이나를 염두에둔 뉘앙스가 풍겨진다. 즉 북한이 NPT체제 도전국들을 상대로 국제공조체제를 구성해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북한의 외교역량이나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등을 감안할때 그 실현성은 적다고 볼 수 있으나 그 가능성을 전혀 무시할 수도 없다.
북한은 또 러시아가 제안한 다자간 회의를 수용할 의사를 흘리면서 시간을 벌자는 전술을 펴는 것으로 보인다. 옐친대통령은 최근 김영삼대통령과의 모스크바회담에서 대북한제재에 동참할 의사를 밝히면서도 자국이 제의한 다자간회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은 목을 조여오는 국제적 압력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제안에 동의의사를 흘려 대북국제공조체의 분열을 기도하는 것 같다. 김부장이 『유엔안보리는 5개상임이사국간의 의견일치가 안돼 대북제재결정을 내리기 힘들것』이라고 말한 대목도 이점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은 미국과의 3단계회담에 주력하고 있으나 차선의 카드도 항상 준비해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역공세를 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한·러간의 밀월관계를 견제하고 한반도 주변 4강의 이해득실을 고려하면서 교묘한 줄다리기를 하겠다는 속셈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의도와 속셈은 분명하지만 북한이 염두에 둘 것은 주변4강 모두가 한반도의 비핵화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역시 『만약 다자간 회의가 실패할 경우에는 대북제재를 할 수밖에 없다』고 공언한 것도 비핵화원칙을 철저히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