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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장애인들 눈물·땀의 드라마/94중학입학검정 41명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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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장애인들 눈물·땀의 드라마/94중학입학검정 41명 합격

입력
1994.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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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목말라 발로 연필쥐고 “혼신 노력”/눈·귀멀어 절망… 「손바닥 공부」로 삶찾아 『양손대신 발가락에 연필을 끼워 공부를 한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중복장애의 고통속에서 향학의 집념을 불태운다』

 서울시교육청이 7일 발표한 94학년도 중학교입학자격 검정고시 합격자 9백3명중에는 뇌성마비 시각장애 청각장애 등 장애인이 41명이나 포함됐다.

 검정고시응시자 대부분이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들이지만 장애인 합격자의 수험기는 한 편 한 편 눈물과 땀으로 연출한 인간승리의 드라마이다. 특히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장애를 훌륭히 극복하고 당당히 합격한 이들의 뒤에는 가족은 물론 자원봉사자들의 힘겨운 뒷바라지가 있어 그 열매가 더욱 값져 보인다.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인 홍경자씨(29·여·경기 평촌신도시 부영2차아파트 305동507호)는 양손을 쓸 수 없어 발가락에 연필을 끼워 답안을 써 합격했다. 홍씨는 간신히 말을 할 수 있을 뿐 양손을 전혀 못쓰는데다 다리마저 불편해 정상적인 학교교육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가정형편도 넉넉지 못해 특수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다. 배움에 목말라 있던 홍씨는 92년 장애인자원봉사단체인 「한벗회」에서 손인주씨(26·서울가양국교교사)를 만나면서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손교사는 홍씨의 향학열에 감동, 한 달에 2∼3번 홍씨의 집을 찾아가 국어 산수등 국민학교 과정을 가르쳤다. 손교사는 제자 홍씨를 언니라고 부르며 애정을 쏟았다. 검정고시일인 지난달 21일 홍씨는 휠체어에서 내려 교실바닥에 앉아 발로 문제지를 넘기고 발가락에 연필을 끼워 문제를 풀었다. 주위의 도움없이 정해진 시간내에 시험을 치렀다.

 발가락글씨는 17살때부터 연습해 왔다. 장애인 문예대회에서 입상한 적이 있는 홍씨는 공부를 계속한 뒤 예쁜 수필집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시·청각 중복장애인 이관주씨(24·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677의1)는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어 「손바닥 공부」를 해왔다.

 돌이 되기전 귀가 들리지 않았던 이씨는 열두살 때 눈마저 실명, 헤어날 수 없는 절망속으로 빠져들었다. 하루 하루를 힘겹게 지내던 이씨는 90년 중복장애인 생활교육기관인 서울 「라파엘의 집」에서 자원봉사자 이영미씨(34·여·서울 맹학교교사)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았다. 이교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일주일에 1∼2번 이씨의 집에서 「손바닥 공부」를 시켰다. 점자교육보다 교사가 손바닥에 글을 써주는 이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다. 이씨는 「손바닥 공부」로 국민학교 교과목은 물론 영어 수학과목까지 배웠다. 이교사는 검정고시날도 시험시간 내내 이씨의 곁에 앉아 일일이 손바닥에 문제를 써 주었다. 이씨는 『태어나서 오늘같이 기쁜 날이 없었다』며 『이선생님은 제가 힘을 잃을 때마다 헬렌 켈러전기등을 읽어 주면서 격려해 주셨다』고 고마워했다. 이씨는 앞으로 고입·대입검정고시까지 합격, 영문점자 번역사가 되는 꿈을 키우고 있다.【최성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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