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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4.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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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의 관문으로 「동방의 지배자」라는 뜻의 블라디보스토크는 본래 해삼위라고 불린 중국의 조그만 어촌이었다. 청국이 열강에 침략 당하던 1858년 러시아가 아이훈조약으로 흑롱강일대를, 2년뒤에는 북경조약으로 연해주일대를 할양받음으로써 러시아 소유가 됐다. ◆흔히 해외의 독립운동 기지하면 상해를 연상하나 3·1운동전까지는 해삼위가 제1의 센터였다. 일찍이 안중근의사도 이곳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에 이어 이토(이등)암살을 준비했고 이상설 이준선생도 이곳을 거쳐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해아밀사로 갔었다. 특히 1910년 6월21일에는 의병장 유린석이 도총재가 되어 13도의군을 창설했고 8월하순 망국의 소식이 전해지자 유린석 이범윤 홍범도등이 성명회(대한국민회)를 조직하고 항일운동에 나섰으며 11년에는 이상설 이동휘등이 권업회를 만들어 독립운동과 교포계몽을 벌이기도 했다. ◆이주해온 한인들이 수천명에 이르자 시베리아총독은 해삼위 서북쪽의 신한촌에 모여 살게 했고 이곳서 장지연 신채호 이강등은 해조신문과 권업신문을 발간했다. 3·1운동후 이동휘가 림정의 초대국무총리로 부임하면서 항일기지는 상해로 옮겨갔고 스탈린은 37년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뒤 이듬해 이 항구에 외국인 출입금지영을 내렸다. ◆해삼위가 베일을 벗은것은 48년만인 86년 고르바초프가 이곳에 와서 『태평양으로 향해 창문을 활짝 열고자한다』고 선언하면서 부터였다. 그로부터 이곳은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한국기업들에 대해 손짓을 하고있다. ◆김영삼대통령이 러시아방문 마지막 날 해외항일운동의 센터였던 해삼위를 방문, 러시아해군을 사열하고 극동함대를 시찰한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날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서 국권회복운동을 펴다 숨진 선렬들도 지하에서 흐뭇했을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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