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감정결과 맹신에 허점/현상태로는 전문성·정확성 기대어려워” 「김기웅순경 살인누명사건」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인권유린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검시제도를 전면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수사당국에 의해 제기됐다.
대검 강력부(부장 심재륜검사장)는 6일 김순경사건의 원인분석을 통해 살인등 강력사건 수사과정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부한 소책자 「강력사건의 수사상 문제점과 대책」을 발간, 전국의 검찰과 경찰에 배포했다.
검찰은 이 책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사체감정결과를 맹신, 수사 초기단계부터 제3자의 침입가능성을 배제한 것이 오판을 초래했다』고 분석, 『이 사건은 강력사건에서 부검의의 감정결과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당시 검·경은 사체를 처음 발견한 김순경(28)이 명백한 타살흔적이 있는데도 자살로 허위신고하는등 의심스런 행동을 했고, 제3자 침입의 증거가 없는 점등을 이유로 처음부터 김순경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었다.
이같은 심증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것은 피해자의 사망추정시간이었다. 국과수가 사체검안후 밝힌 사망추정시간은 상오3시30분∼5시사이. 김순경이 여관을 나간 시각은 이보다 훨씬 뒤인 상오 7시께였으므로 결국 피해자 사망당시 김순경이 현장에 있었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망시간추정의 근거가 됐던 사체의 위내용물 소화정도등의 감정과정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 이 책자의 지적이다. 당시 담당부검의가 ▲소화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음주 스트레스 수면정도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직장온도나 사체의 경직상태도 검시경험이 부족한 경찰관의 현장감식보고서만을 토대로 사망시간을 추정했다는 것이다.
이 책자는 『경찰이 범인으로 지목한 김순경이 피해자와 함께 있었던 시간대에 맞춰 부검의가 감정결론을 내린 것같은 의심이 들 정도』라며 『결과적으로 오판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검시제도 자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책자는 ▲검시당담 검사·경찰관의 자질이 부족하고 ▲국과수 검시전문의가 8명밖에 안돼 한사람이 한해 4백∼5백구의 변사체를 부검해야하고 ▲그나마 지방에서는 공의에게 부검을 맡기고 있어 현행 검시제도로는 전문성과 정확성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검시제도 개선방향으로는 ▲검사와 경찰관에 대한 법의학이론·실무교육 강화 ▲법의학과 신설이나 법의학교육시간 확충을 통한 전문의 양성 ▲법의학 전문의를 각급 검찰청의 검시담당관으로 촉탁하는 방법등을 제시했다. 또 검사에게 검시를 직접 담당하게 하는 현행 겸임검시를 근본적으로 개혁, 법의학전문의에게 검시권한을 부여하는 미국의 전담검시제(MEDICAL EXAMINER)나 영국의 검시관(CORONER)제도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한다고 제안했다.
▷김 순경 사건◁
92년 11월29일 상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모여관에 함께 투숙했던 애인 이모양(당시 18세)이 시체로 발견되자 김순경이 살인범으로 몰려 1심에서 징역1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상고중이던 지난해 12월 진범 서모군이 경찰에 붙잡혔다.【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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