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 러 경찰마저 수색 눈 번뜩/한국공관앞 「덫」… 접근불가능/수어살기 한계… 교포 냉대 더 고달파/단파방송 들으며 「귀순조치」만 고대 시베리아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노동자들은 사회안전부와 친북한성향의 러시아경찰에 쫓기며 내일을 기약없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하바로프스크나 블라디보스토크등 대도시 주변을 떠도는 많은 탈출자들은 현지교민사회의 무관심과 냉대로 극도의 불안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난 5월 16일, 하바로프스크외곽의 허름한 땅집(텃밭이 달린 일반가정집)에서 1개월째 숨어 지내고 있는 탈출벌목노동자 정경수씨(28·가명·원산출신·티르마에서 93년12월 탈출)는 취재팀의 방문에 대뜸 『한국정부는 우리를 왜 빨리 데려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신을 도와주는 한 성직자의 옷을 빌려입고 한국에서 온 장사꾼 행세를 하는 그는 『우리는 매일 단파라디오를 끼고 살면서 김포공항에서 환영받는 탈출노동자의 귀순소식을 기다린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통 그런 소식을 들을 수가 없어 실망스럽다. 한국정부가 데려가지 않는 것인가 러시아측이 보내주지 않는 것인가』라고 흥분했다.
정씨와 같이 지내는 김영식씨(31·가명·평양출신·에힐칸에서 93년11월 탈출)는 『단파방송을 통해 탈출노동자의 귀순소식을 듣는 날이면 어김없이 내가 서울에 가있는 꿈을 꾸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을 만나러왔던 일부 한국인들에게 상당히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판에 『어떻게 탈출했느냐』『어떻게 숨어 지냈느냐』고 흥미위주로 관심을 표명하고는 어려운 생활에 보태쓰라며 돈 몇푼집어주고 가버린다는 것.
○범법자도 함께섞여
취재팀이 『숨김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겠느냐』고 구슬리자 그때서야 김씨는 에힐칸지역 벌목현장에서 벌채한 원목을 에힐칸역 부근의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제마즈트럭 운전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탈출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가끔 단파라디오로 한국방송을 듣고 서울을 동경하다 함께 일하던 이학순씨(34세·가명·신의주출신)가 아파 쉬고있는 틈을 타 트럭을 몰고 지모비요쪽으로 달아났다. 지모비요역직전의 간이역인 트로바에서 러시아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열차를 얻어타고 하바로프스크로 도망쳐왔다는 것. 그 과정에서 그는 안전원에 걸려 체포될 위기를 맞았으나 5만루블(약2만원) 지폐한장을 찔러주고 빠져나왔다.
그러나 일부 탈출자들은 겉으로는 북한체제에 더이상 견디지못해 탈출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벌목장내에서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처벌이 두려워 탈출한 자도 적지않다고 한다.
김씨는 취재팀에게 자신의 탈출경로를 거꾸로 적용해 잠입해볼 것을 권했다. 그러나 『땅이 풀려 주변지역이 늪지로 변해 자동차도로가 끊어졌을지도 모른다』며 곧 말을 철회했다. 대신 그는 티르마로 잠행외출을 다니는 동료의 예를 들면서 『체그도민행 기차는 보통 새벽3∼4시께 에힐칸을 지난다. 에힐칸에서 두번째 간이역에 내려 적당한 곳에 숨은뒤 교포 한사람만 도보로 에힐칸으로 잠입, 사냥꾼차를 구할 수만 있으면 약1백60 떨어진 벌목현장을 가볼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은 사실상 김씨의 이같은 아이디어를 원용, 엘가 벌목현장에 잠입했다.
그들이 묵고있는 땅집은 최근 완공된 아파트로 이사한 러시아인으로부터 빌린 것으로 간단한 취사도구와 담요몇장이 짐의 전부였다.
취재팀의 벌목현장 취재 경험에 의하면 일반노동자의 벌목장탈출은 무척 힘들다. 외화벌이를 나왔다가 돌아가지 않거나 인근지역으로 외출이 가능한 제1연합 및 각 사업소 본부요원이 아니면 벌목장탈출은 안전원들의 통제와 감시가 엄격해 최악의 경우 목숨마저 걸어야 한다.
하지만 사선을 넘어 탈출한 노동자들은 은신처에서 더욱 고달픈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안전원에게 체포될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감과 교민사회의 냉대속에서 서울로 갈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일단 모스크바든 중국연변이든 멀리 도망갈 수 있는 도피 자금을 모으고 있었다.
하바로프스크교민인 서상우씨(48·가명)는 『탈출 벌목노동자들은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있다. 예전에는 교민들이 탈출자들이 너무 불쌍해 도와주곤 했는데 한 탈출노동자가 연변으로 도망갈 비용을 마련하기위해 자신을 숨겨준 교민을 살해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교민들은 이제 탈출자를 경원시한다』고 교민사회의 냉랭한 분위기를 전했다. 이제 그들을 헌신적으로 돕는 사람은 현지에서 포교생활을 하는 몇몇 성직자들이 전부인듯 했다.
무엇보다 탈출자를 괴롭히는 것은 눈에 불을 켜고 자신들을 찾아다니는 북한의 안전요원들이다. 현지교민들에 의하면 북한임업대표부측은 노동자가 행방불명된지 2∼3일쯤 지나면 탈출자들의 색출체포만을 전담하는 체포조를 가동한다. 사회안전부요원 2명과 탈출자의 얼굴을 잘아는 벌목노동자 1명등 3명이 1개조가 돼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냥개」로 악명
당성이 강하고 탁월한 무술실력을 갖춘 요원만을 차출해 구성한 체포조는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등 시베리아의 주요 기차역과 공공장소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었다. 이들은 깡마른 얼굴, 살기등등한 눈, 민첩해보이는 몸매와 예민한 후각을 지녀 교민사회에서는 「사냥개」로 불렸다.
사냥개는 잔인하기 그지없다고 교민들은 입을 모았다. 현지의 한 교민은 『지난해 말인가 집으로 가는 데 갑자기 등뒤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평상복차림의 건강한 두사내가 행색이 초라한 한 청년을 붙들고 거의 짓밟고 있었다. 청년은 개구리처럼 땅바닥에 널부러져 파들파들 떨었다. 그리고 개를 끌고가듯 그를 질질 끌고갔다』고 사냥목격담을 전해줬다.
체포조는 현장에서 탈출자를 체포하면 임업대표부 구류장에 감금, 협조자색출을 위한 심문을 끝낸뒤 환자로 위장해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체포조외에 탈출자를 가장해 정보를 수집하고 캐는 안전원도 대도시 주변에는 많았다. 지난5월 18일 블라디보스토크 중심가에 있는 자유시장에서 빵떡모자를 눌러쓴 한 북한인이 취재팀에 접근해왔다. 그는 귓속말로 탈출한 벌목노동자로 소개하면서 『도와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시장 구석에서 보여준 그의 임시거류증에는 「김XX·32세·체그도민 4사업소근무」로 적혀 있었다. 임시거류증에 붙은 사진과 얼굴도 비슷했다.
그러나 함께 장사하는 중국교포들은 『저친구를 믿으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북한 안전원들이 나와 단속할때 다른 사람들은 어디론가 잡혀가는데 저 친구는 멀쩡했다』며 『시장에 나와 탈출자의 동향을 살피거나 몰래 외화벌이 나온 북한인들을 감시하는 안전원일 것』이라고 귀뜸했다.
○도피자 2백여명
러시아경찰당국의 불심검문도 탈출자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취재팀이 지난 5월 17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을때 블라디보스토크 전역에는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특별단속이 실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블라디보스토크의 한국총영사관은 비상이 걸렸다. 한국인 상사직원 두사람이 불심검문에 걸려 그중 한사람이 러시아경찰측에 억류되어있다는 것.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두사람중 풀려난 사람은 한국인 상사직원이었고 억류된 사람은 한국인 상사직원이 도와주던 탈출 북한 벌목노동자였다. 공관관계자는 러시아경찰이 탈출노동자를 틀림없이 북한안전부측에 넘겨줄 것이라며 민첩하게 움직였다. 취재팀은 그 결과를 알아보지 못한채 벌목현장으로 떠났다.
현지 관계자들에 의하면 현재 모스크바와 하바로프스크, 블라디보스토크등에 은신중인 탈출노동자는 약 2백여명에 이른다. 이중 우리 공관에 도움을 요청한 자는 약90명선. 이들은 우리공관이나 일부 상사주재원, 성직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한국으로 나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안전원들의 공관주변 감시가 심해지면서 공관을 직접 찾아오는 벌목노동자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귀순희망자는 대부분 전화나 편지, 상자주재원이나 교민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해온다는 것.
아무튼 취재팀은 북한측의 방해공작으로 탈출자의 한국행이 주춤해지면서 체포위험과 생활고로 더욱 비참한 생활을 꾸려가야만 하는 그들의 숙명을 말과 행동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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