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무릅쓴 잠입르포 전통적 「패기」 돋보여/기사한줄·제목하나도 독자마음 와 닿도록 언론직은 명예로운 전문직이다. 이렇게 말하면 기자 등쌀에 시달리는 이들은 「명예 좋아하시네」하면서 야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론이 담당하고 있는 임무가 명예로운 것은 사실이다. 언론은 민주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데 필수불가결한 정보를 유통시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론은 민주사회의 정통성에 토대가 되는 여론을 매개하고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만 그동안 언론직이 언론인 자신에 의해서는 물론이고 언론의 보도로 영향을 받는 세력에 의해서도 그 명예가 훼손되어 왔을 뿐이다. 따라서 「나의 지면평」도 한국일보가 언론에 부여된 명예로운 임무를 얼마나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가가 그 판단기준이 된다. 처음이라 좀 거창하게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고치기 쉬운 문제부터 시작하기로 하겠다. 잘 알다시피 신문의 편집과정은 기획과 취재, 기사작성과 기사편집(데스크), 그리고 지면배치와 제목뽑기의 3단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평소 한국일보를 읽으면서 제목뽑기에 대해 다소간 내 나름의 불만을 느껴왔다. 한국일보의 제목은 대체로 추상적인 감을 준다. 예컨대 6월3일자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을 「한·러 동반자 관계」로 뽑았는데 다른 신문들은 러, 북한 무기공급 중단」과 같이 구체적인 사항을 제목으로 뽑았다. 제목을 호들갑스럽게 선정적으로 뽑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목은 상징성, 직접성, 구체성이 살아 있으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구매욕구가 일도록 상품을 포장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사의 제목도 열독욕구를 자극할 수 있도록 뽑아야 한다.
지난주 한국일보의 기획취재로 돋보인 기사는 역시 위험을 무릅쓴 「시베리아 벌목장 잠입 르포」가 아닌가 한다. 한국일보의 전통적 강점인 「근성과 패기」의 기풍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반가웠다. 그래서 기사를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그러나 다소 실망했다. 르포기사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잠입의 성공을 너무 의식하여 르포기사의 요체인 「SHOW―DO NOT―TELL」원칙에 대한 인식이 소홀해진게 아닌가 생각했다. 보고들은 것을 그대로 그려주기만 하면 될 것을 설명을 너무 많이 하여 현장의 적실성(AUTHENTICITY)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음을 볼때 안타까웠다.
「근성과 패기」, 한국일보의 전통적 강점인 바로 이 기풍이 최근에 와서 되살아나고 있다.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치열한 매체간 경쟁 속에서 어떤 신문도 엉거주춤 적당하게 만들어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이 「근성과 패기」의 기풍은 기획과 취재과정에서는 물론 기사작성, 편집등 신문제작의 모든 과정에 적용된다. 제목 하나를 뽑는데서도, 기사 한줄 쓰는 데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해설을 쓰는 데서도 「근성과 패기」의 기풍을 발휘하여 자기고민을 치열하게 해야한다.<한양대교수·신문방송학>한양대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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