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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안봐주기(장명수 칼럼: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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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안봐주기(장명수 칼럼:1683)

입력
1994.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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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젊은이들은 전세대 젊은이들에 비해서 너무 이기적이고 타산적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지만, 달라진 것은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부모세대·조부모 세대도 변하고 있다. 요즘 할머니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딸들을 공부 많이 시켜 시집보내면 곧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직장에 다니랴, 살림하랴, 아이 키우랴, 죽겠다고 징징울면서 아이를 맡기러 온답니다. 그러니 외손자 봐주는 수고를 안하려면 딸들을 공부 많이 시키면 안됩니다』

 『친손자 안봐주는 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며느리 앞에서 옛날 할머니들처럼 아이 우유병을 입으로 쭉쭉 빨고, 밥을 십어서 먹이는등 비위생적으로 굴어 보세요. 며느리가 질색을 하여 다시는 아이를 안 맡긴답니다』

 요즘 할머니들이 손자 봐주는 일에 꾀를 부리는 것은 여성들의 삶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외손자 친손자를 보아 할머니가 되기 시작하는 50대 여성들은 모처럼 가족 뒷바라지에서 해방되어 여기 저기 놀러 다니고, 취미특강에 관심을 갖는등 매우 바쁘다. 그들은 또 갱년기를 맞아 심신이 힘든 상태가 되므로 아기 봐주는 일이 사실 벅차기도 하다.

 대가족속에서 절대적인 어른대접을 받으면서 손자들을 돌보던 전세대 할머니들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자녀들의 보살핌이 있든 없든 혼자 살아 가는 노인들이 많고, 혼자 살다가 사망한지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일이 흔한 세상이 되었으니, 할머니의 손자사랑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할머니의 존재가 무료탁아를 보증하던 시절은 지났다.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없는 여성들은 한층 더 고달프다. 직업을 가진 여성들중 아기를 맡길 곳이 없는 사람들은 마치 전쟁하듯 뛰고 있다. 엄마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아기를 맡길 수 있는 탁아소가 거의 없으니, 아기 봐줄 사람을 구해야 하고, 자신의 월급과 맞먹는 돈을 그에게 주면서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남재희노동부장관은 얼마전 『97년까지는 모든 공공기관에 직장탁아소를 두도록 추진하겠으며, 우선 금년내로 광화문·과천의 정부종합청사와 지방자치단체등에 직장탁아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는데, 반가운 일이다. 한가지 유의할 점은 직장탁아소란 남녀사원 모두에게 필요한 시설이라는 인식아래 정책을 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탁아소는 여성직원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고, 엄마가 직업을 갖고 있어 보살핌이 필요한 사원자녀들을 위한 시설이다. 미국등의 직장탁아소들은 남자사원들의 이용이 매우 높다. 남자사원에게도 출산·육아휴가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출산·육아·탁아는 부모공동의 문제고, 국가의 문제다. 그런 인식이 확산돼야만 탁아소 정책이 좀 더 폭넓은 호응을 얻어 효율적으로 풀려갈 것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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