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조카의 병아리(1000자 춘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조카의 병아리(1000자 춘추)

입력
1994.06.05 00:00
0 0

 봄이 되면 동네의 국민학교 앞길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어린 아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방과 후의 아이들이 상자속에 가득 들어있는 병아리를 들여다보면서 주머니 속의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집으로의 발걸음을 마냥 늦추고 있다. 그걸 본 일곱살짜리 우리집 큰 아이도 병아리를 사달라고 졸라댔다. 길에서 파는 병아리들은 대체로 건강하지 않아 곧 죽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운이 좋아 건강한 장닭으로 자라더라도 그 처리가 더 큰일일 것이라는 생각에 오래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국민학교 2학년인 조카가 병아리 한마리를 사서 「아롱이」라는 제법 예쁜 이름을 붙여 놓고 정성껏 키우기 시작했다. 그후 아롱이는 조카는 물론 우리집 세살난 꼬마, 동네 아이들까지도 모두 사랑하는 병아리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후 아롱이가 보이지 않게 되는 슬픈 일이 생겼다. 좁은 상자 안에서 삐약거리며 푸드득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운동이라도 하라고 앞마당 잔디밭에 놓아주곤 했는데 눈깜짝할 사이에 없어지고 만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아롱이를 부르며 온동네를 헤매고 다녔으나 찾을 수 없었다. 아롱이의 증발 수수께끼는 그 이튿날 풀렸다. 눈이 유난히 반짝이는 도둑고양이가 대낮에 몇번이나 마당안을 기웃거리는 것이었다.

 이 작은 일로 인해 우리 아이들은 생명이 있는 것을 사랑하는 법, 그리고 그것을 잃었을 때의 슬픔을 처음으로 경험하였다. 아롱이는 전자장난감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귀중한 선물을 준 셈이다. 그후로 우리 아이는 더이상 병아리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아 다행스러웠지만 어릴 적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 묻어주며 펑펑 울었던 기억과 함께 아직도 서늘함이 가슴에 남아 있다.<임지선 작곡가·제1회 안익태작곡상 수상자>

◎「1000자 춘추」필진 바뀝니다

 오늘부터 「1000자 춘추」의 필진이 새로 바뀝니다. 앞으로 3개월간 매주 2회 문화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과 만나게 될 새 필진은 다음과 같습니다.(가나다순)

 ▲고정수=홍익대 조각과 졸, 국전추천작가·조선대교수 역임, 조각가▲변기영=서울가톨릭대 졸, 용인성당주임·주교회의 2백주년기념사업위 사무국장 역임, 천주교수원교구 천진암성지 주임신부▲이문웅=서울대사회학과 졸, 한국문화인류학회장, 서울대인류학과 교수▲인병선=서울대 중퇴, 시집「들풀이 되어라 출간」,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림지선=연세대 작곡과 졸, 미인디애나 대학 음악박사·94년 제 1회 안익태작곡상 수상, 연세대강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