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사명」찾기 무거운 짐”/「고삐풀린시대」 새방향 모색이 과제/일제치하 팔봉 민족현실 극복 열정/70연대 김현 이념억압속 변혁 추구 제가 생전의 팔봉 선생님을 뵐 수 있었던 것은 「한국문단사」를 쓰던 73년 봄이었습니다. 연약한 우리의 초기 문단에 처음으로 사회주의 문학론을 도입하고 적극적으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을 이끌어가시던 시절의 이야기를 여쭙기 위해서였는데, 50년도 넘은 일들을 선생님은 자상하게 설명해주신 뒤, 『젊은 혈기의 우리들에게는 착취당하고 있는 조선 민족을 위해 문학은 정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질문이었다』고 하신 말씀은 지금까지도 인상깊이 박혀, 남아 있습니다.
팔봉비평문학상의 첫 수상자의 영예를 얻은 김현씨는 작고하기 한달 전에 , 6·25 적치중에 시체처럼 처참해진 모습으로 찍혀진 팔봉선생의 유명한 사진에서 「뜨거운 상징」을 발견하면서, 그 뜨거운 상징이야말로 감동을 유발하는 문학의 힘이라고 수상인사에서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 김현씨는, 젊은 시절의 팔봉이 제창했던 진보주의적 문학 이론들이 새로이 피어나기 시작하던 70년대말에, 『이 시대에, 문학비평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제기한 바 있습니다.
두 정력적인 비평가들은 서로 다른 정황과 논리 속에서, 그러나 한가지의 질문과 싸웠습니다. 20년대의 팔봉은 식민통치를 당하고 있는 우리 민족에 문학은 어떻게 현실을 변혁시켜야 할 것인가를 외쳤고, 70년대의 김현은 유신독재등의 억압적인 체제속에서 문학은 무엇으로 스스로의 문학다움을 이루어낼 것인가 속삭였습니다. 그 대답을 찾기 위해 20대의 팔봉은 사회주의 문학론을 끌어들여 현실에 대한 문학의 도전을 주장했고, 40대의 김현씨는 문학의 자율성 속에서, 새로이 바라봄을 통해 세계가 바꾸어지기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하여 문학과 현실에 대한 두 개의 관점을 얻어냈지만, 그럼에도, 『지금, 문학비평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다시 부닥쳐 있습니다. 공정하게 말하여, 오늘의 우리는 팔봉이 괴로워했던 식민지 상태로부터 벗어나 있고, 김현이 두려워한 이념적 억압으로부터도 얼마큼 비켜나 있습니다. 그런 대신, 우리는 고삐 풀린 속악한 시장경제적 구조에 더욱 깊이 매여있고, 보다 착잡한 정보화 사회 속으로 얽혀 들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정황 속에서, 문학이 전래의 그 위엄과 영향력을 잃어가며, 허위와 타락의 물결에 얹혀, 진정성의 포기와 진실의 은폐라는 잘못된 추세를 더욱 가속시켜가고 있다는 우울한 판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팔봉과 김현이 물었던 질문을 다른 문맥 속에서 다시 묻고 그 대답을 다른 시각에서 새로이 모색해야 할 과제가 이래서 제기되는 것입니다.
저 자신은 이 어려운 작업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그러나 그 작업의 중요성만은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동료들과 후배들이 이 과제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고민하며 씨름하고 있다는 고마운 사실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상의 영예는 그러므로 문학의 바른 위상을 지키며, 그 진중한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에게 돌려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분들을 대신해서, 이 상을 제정하신 팔봉선생님의 가족과, 이 상을 영광으로 키워온 한국일보사, 그리고 초라한 저를 수상석에 밀어세우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어제 본사서 시상식/문인·출판인 등 백여명 참석
한국일보사가 제정한 「제5회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식이 3일 하오3시 본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김성우 한국일보 고문 겸 주필은 평론집 「숨은 진실과 문학」으로 올해의 팔봉비평상을 수상한 문학평론가 김병익씨에게 상금 5백만원과 상장,상패를 수여하며 수상자의 문학적 공로를 치하했다. 시상식에는 아동문학가 윤석중씨와 시인 구상씨, 문학평론가 유종호 김치수씨, 소설가 최인훈 김원일 홍성원 김주영 한승원씨 등 1백여명의 문인, 출판인, 팔봉 선생의 유족 등이 참석했다.
「팔봉비평문학상」은 문학비평에 과학성을 도입한 팔봉 김기진선생 (1903∼1985년)의 문학적 유지를 받들어 한국일보사가 유족의 기금으로 제정한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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