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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0돌 동지들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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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0돌 동지들 한자리에

입력
1994.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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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기념행사… 친목도모·향후좌표 모색 6·3동지회(회장 이명박의원·민자)는 6·3학생운동 30주년인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뜻깊은 모임을 가졌다. 기념행사를 겸한 「6·3학생운동사」 출판기념회였다.

 이날 행사에는 이부영 유준상 정대철 박범진 박정훈 이세기 김덕규 김정수의원등 여야의원과 이홍구통일부총리 서청원정무장관 이경재공보처차관 현승일국민대총장등 각계인사 3백여명이 참석, 30년전과 오늘의 정치상황을 회고, 비교하며 동지들간의 친목도 다졌다.

 홍사임상임간사의 사회로 진행된 1부 강연회에서 강사로 초빙된 이홍구부총리는 「민족 공동체 건설과 사회계약」이란 주제로 6·3학생운동의 현대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대국민적 화합을 촉구했다.

 2부 「6·3 학생운동 출판 기념회」는 이명박회장의 6·3학생운동사 출판연역소개와 유준상민주당최고의원, 서청원정무장관 축사로 이어졌다.

 이회장은 「6·3학생운동 30주년에 즈음하여」란 기념사에서 『문민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6·3학생운동세대는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고 전제한 뒤 『문민정부의 민주화와 개혁을 성공시켜 민주주의 민족자주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까지 확장시켜야 하며 이는 곧 6·3학생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6·3학생운동은 64년 3월 24일을 기점으로 이듬해 9월까지 연인원 3백50만명이 참여, 1년 6개월여 이상 전개된 범국민적 민주항쟁이다.

 당시 학생들은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와 「박정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64년 6·3계엄령과 65년 8·26위수령의 발동을 분수령으로 데모학생 처벌강화와 학칙개정·참여교수 탄압·휴교령등 학원에 대한 폭압의 과정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구속·제적되는 희생을 치렀다.

 6·3학생운동의 맥은 이듬해의 한일협정 반대운동으로 이어지며 한국 민주화운동의 본류를 형성했다.

 「6·3동지회」는 이 운동을 주도했던 각대학 학생대표들이 64년 11월 3일 서울 중구 대성빌딩에서 결성한 모임이다.【박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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