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논단(5월 5일자)을 통해 나는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민자를 유치하려는 정부의 계획을 비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의견에 공감한다며 격려의 편지 또는 전화를 해왔다. 그러나 반론 또한 만만치 않았다. 오늘은 지난번에 우려하였던 땅투기와 경제력집중 심화 가능성에 더하여 몇가지 문제를 더 지적함으로써 반론에 대응코자 한다.
정부가 SOC건설에 민자유치를 적극 주장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사회간접자본부족이 물류비용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국제경쟁력 약화를 가져왔다. 그런데 불행히도 정부는 민간에 비해 비효율적이며 또 돈도 없으니 민간이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 논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결여하고 있다. 마치 모든 문제가 SOC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처럼 주장함으로써 문제의 초점을 흐리게도 한다. 물론 SOC부족이 경쟁력 약화의 한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더욱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민자를 유치할 경우 오히려 문제는 악화될 것이다.
우리 기업의 대외경쟁력이 약한 것은 기업외부요인과 기업내부요인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SOC부족에 따른 물류비용상승은 기업외부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한편 기업내부요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연구 및 신기술 신제품 개발에 인색했던 기업의 투자행태이다. 그동안 재벌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보다는 재테크나 부동산에 열중하면서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였다. 그 결과 고임금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더 이상 가격 및 품질경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정부는 기업외적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SOC건설을 맡고 기업은 신기술개발을 통해 국제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한다. 정부와 민간의 효율적 분업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투자재원의 부족을 내세워 민자를 유치한다고 하면 연구개발에 충당되어 기업의 실질적 경쟁력강화를 위해 쓰일 돈이 SOC건설로 돌려질 것이다. 재벌들은 불확실하고 어려운 기술개발보다는 비록 회임기간이 길지 몰라도 정부가 확실하게 수익을 보장하는 SOC사업에 끼여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부가 왜 이들의 기술개발을 독려는 못할망정 정도에서 벗어날 유인을 제공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정부의 책임회피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제조업으로의 자원흐름이 상대적으로 점점 줄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다음으로 자금조달방식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어떤 이들은 민간기업이 부족자금을 주식·채권시장을 통해 조달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대외개방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대규모의 채권·주식발행이 발행기업은 물론 금융시장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
우선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민자유치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따라서 필요자금을 과연 주식시장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지 의문시된다. 둘째로 설사 자금조달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국제적인 자본이동이 자유화될 경우 추가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해외자본의 탄력적인 유출입은 아무런 완충장치없이 그대로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는 곧 기업가치의 변화와 연결될 것이다. 우리 기업의 허약한 재무구조로 볼 때 이러한 금융부문의 불안정은 곧 실물부문의 불안정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는 채권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건 민간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건 일시적인 금리상승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양자가 구별되는 측면도 있다. 우선 국채는 회사채에 비해 위험도가 훨씬 낮은 우량증권이어서 설사 만기가 긴 장기채의 형태로 발행되더라도 훨씬 더 쉽게 채권시장에서 소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국채발행이 갖는 보다 근본적인 장점은 그것이 통화의 간접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통화정책의 개선을 운위하면서 공개시장조작의 당위성만 주장했지 그 전제조건에 대해서는 소홀하였다. 그런데 이제까지 공개시장조작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채시장의 허약성 때문이었다. 참고로 일본은 1970년대 중후반 증가하는 재정지출을 국채발행으로 충당하였다.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초 기간에 일본의 국채발행은 8배이상 증가하여 GNP대비 국채의 비중이 7%에서 32%까지 상승하였다. 이러한 국채발행의 급증에 따라 채권시장이 활성화되고 금융자율화가 촉진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 초반의 무리한 안정화정책이 가져온 사회간접자본부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간접자본을 위해 민자를 유치하는 것은 또 하나의 무리수다. SOC에 대한 민자유치계획은 포기되어야 한다. <서울대교수·경제학>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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