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돕는다” 러시아여인에 접근도 경계/외딴곳에설치 구타·심문/「구류장」옮겨 조사… 북송/안전부요원 등 사욕·전횡 극심/40∼50만루블 뇌물주고 탈출도 시베리아 북한 벌목현장은 벌목노동자의 안전은 물론 인권의 사각지대로 불릴만했다. 외부인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벌목작업장은 벌목노동자의 안전이나 인권에 신경 쓸 이유가 애초부터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취재팀이 잠입한 엘가지역의 산지중대 벌목노동자들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당간부나 안전요원들로부터 엄격히 통제되고 있음이 잠입취재에서 확인됐다. 이곳에서 안전요원들에 의한 린치등 가혹행위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사고로 위장하면 그뿐일 처지였다.
벌목현장에서 사회안전부 요원들이나 당간부들은 이같은 자연조건을 이용해 노동자의 탈출을 막고 작업질서를 유지한다는등의 명분으로 린치를 자행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탈출 벌목노동자들에 의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취재팀은 제2사업소 산지중대 벌목현장에서 인권유린의 단서를 확인했다.
그중 하나가 지옥통의 존재. 산지중대에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튼튼한 자물쇠로 잠긴 빵통하나가 다른 4개와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작업현장으로 들어가는 작은 통나무다리 못미친 지점의 울창한 삼림속이었다. 한 벌목노동자에게 빵통하나가 왜 동떨어져 있느냐고 묻자 우물쭈물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한번 내부를 구경할 수 없느냐』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자 그는 펄쩍뛰었다. 그 빵통은 규율을 어긴 노동자를 가두거나 현장에서 바로 사상재무장을 시키기 위해 만든 이른바 「지옥통」이었다. 지옥통의 존재는 탈출벌목노동자들에 의해 외부세계에 알려졌다.
엘가역 남쪽 우쉬만에 있는 제1연합산하 제6사업소의 산지중대에서 밀대공(톱공이 나무를 자를 때 한쪽방향으로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장대로 밀어주는 사람)으로 근무하다 탈출한 김상철씨(가명·32·함흥출신·93년 10월 우쉬만에서 탈출)는 『벌목작업장에는 사회안전부요원이 불순한 노동자나 작업조건등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을 불러 구타, 폭행하면서 심문하는 빵통, 이른바 「지옥통」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그곳에 갔다온 사람들이 두번다시 가고 싶지 않은 지옥같은 곳이라고 해서 지옥통이라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지옥통에선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북한임업대표부나 체그도민의 제1연합 및 틴다의 제2연합, 그리고 제1, 2연합 산하의 17개 개별사업소에 갖춰져있는 임시구류장보다도 더 인권유린행위가 자행된다. 가혹행위를 감시하는 눈이 전무한데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작업중에 당한 사고로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지중대로 잠입하던날 취재진은 우리가 탄 군용트럭을 보고 놀라는 노동자 한사람을 만났다. 그는 다른 노동자와는 달리 첫대면에서 필요이상의 경계심을 갖고 취재팀을 노려봤다. 군용트럭과 사냥복으로 위장된 취재팀의 모습을 봐서인지 시종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한참 뒤 다른 노동자의 귀띔으로 그가 취재팀 차량을 2사업소본부의 안전요원차량으로 착각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지옥통교육이 끝나면 대부분 안전요원에 의해 수갑을 차고 사업소구류장으로 끌려간다는 것이다.
탈출노동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사업소 구류장에 끌려갈 경우 약 1주일간 매일 예사로 행해지는 고문속에 조사를 받게 된다. 이때 소명의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은 채 당과 체제에 대해 불평을 털어놓았다는 사실 인정만을 강요받는다. 이어 체그도민에 있는 1연합본부 구류장을 거쳐 하바로프스크임업대표부 구류장으로 옮겨진다. 임업대표부 구류장으로 옮겨진 노동자들은 1개월에 한번정도 당국의 불순분자송환계획에 따라 북한으로 송환돼 형무소에 감금된다. 북한의 사회안전부측은 불순낙인이 찍힌 노동자들을 한번에 약 20∼30명씩 본국으로 송환하는데 송환할 때는 이들의 한쪽다리에 널빤지를 대고 붕대로 감아 깁스환자로 위장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뇌물이다. 각 단계별 구류장에서 아는 사람을 통해 고위안전부요원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것이다. 한 탈출벌목노동자는 『외화벌이를 나갔다 당간부의 미움을 사 구류장에 끌려간 동료가 며칠만에 풀려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주변에서는 그가 안전부요원들에게 40만루블(약 16만원)을 주었다, 50만루블을 주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전했다.
벌목장내 인권유린행위는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피신생활을 하고 있는 탈출노동자들로부터 생생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최소한 한번쯤은 작업도중 사소한 이유로 구타나 폭행을 당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정경수씨(28·가명·원산출신·티르마에서 93년 12월 탈출)는 손발의 동상이 도지는 바람에 치료를 위한 휴식을 요청하다 별거 아닌 것 갖고 꾀병부린다며 간부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전날 아무리 철야작업을 했더라도 아침 작업시간에 늦거나 식사 및 휴식시간이 길어지면 요령을 피운다며 얻어맞는다고 했다.
가혹행위는 책임할당량 완수기한이 다가오는 3월말부터 더 심해진다. 간부들은 스스로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 닦달한다는 것이다.
북한 벌목장내 인권유린행위는 가혹한 자연조건에서 작업을해야 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고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권유린의 목적이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작업장의 간부나 사회안전부 요원들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동료에 대한 부당한 가혹행위에 대들다 스스로도 송환될 위기에 몰리자 탈출한 이동수씨(34·가명·신의주 출신·94년 2월 체그도민에서 탈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한 노동조건과 형편없는 식사, 당간부들의 전횡에 불만을 토로하다 수갑을 차게 된다』고 말했다. 불만이 있더라도 혼자 삭여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안전요원들은 벌목노동자들의 당성을 시험하기 위해 불만을 털어놓도록 유도하기도 하는데 이 덫에 걸리면 즉각 송환령이 내려진다.
최근들어 사회안전부 요원들이 부쩍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은 벌목노동자들의 러시아여인에 대한 접근이다. 노동자들과 가까워진 러시아여인들이 그들의 탈출을 쉽게 도와줄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임시거류증을 취득케 해 합법적으로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일부벌목장에서는 과거 러시아여인에게 접근하다 적발된 전력이 있거나 러시아여인과 가깝다는 소문이 나도는 사람, 또는 러시아말을 잘 구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외출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고 한다.
취재팀은 이번 취재기간동안 지난해 11월까지 북한 임업대표부 구류장이 있었던 비로비잔 목재가공공장을 찾아가 구류장 존재를 확인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서쪽으로 약80 떨어진 비로비잔은 러시아내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이 몰려사는 특이한 곳. 2차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군포로 수용소로, 최근까지는 악명높은 임업대표부 구류장으로 벌목노동자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취재팀이 찾은 지난달 비로비잔목재가공공장은 시당국의 강제추방조치에 따라 철수한 북한측에 의해 폐허가 되어 있었다. 북한인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코발료프공장장은 노동자들의 숙소를 안내하다 한 건물앞에서 『여기가 말을 잘 안듣는 사람들을 가둬 놓던 곳』이라고 말했다. 바로 대표부 구류장이 있었던 곳이다.그러나 북한측이 대표부구류장은 물론 심지어는 그들에게 신성한 「김일성 집」마저 폐허로 만들어놓고 떠나 구류장 시설은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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