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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5월의 풍경들이여/박완서칼럼(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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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5월의 풍경들이여/박완서칼럼(화요세평)

입력
1994.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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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숨가쁘게 달려오더니 미처 붙들 새도 없이 가버렸다. 그래도 5월이 가기까지는 봄이라고 여기고 싶지만 가로수는 짙푸르고 공원과 아파트의 철책마다 줄장미가 만개해 있다. 한낮의 더위 또한 찌는 듯하여 그나마 아침 저녁 서늘한 게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동이 트면 물통을 들고 슬슬 산책을 나간다. 단지내에 지하수가 있지만 아침 바람이 좋아 이웃동네까지 한 바퀴를 돈다. 아직 물까지 사먹기는 싫어서 지하수를 길러 다니지만 수돗물보다 더 낫다는 믿음이 있어서는 아니다. 수돗물이고 지하수고 끓여서 마신다. 생수에 대한 믿음도 별로 없다. 그러니까 물을 긷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맨몸으로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보다는 빈 물통이라도 들고 휘적휘적 걷는 게 속 편해서 나왔다고나 할까.

 백발의 노신사가 차를 닦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백발에 잘 받는 화려한 티셔츠와 정정한 자세와 민첩하고 꼼꼼한 일솝씨도 좋아 보이지만 그 나이에 중형차를 손수 운전하고 출근할 수 있는 현역이라는 것도 복돼 보인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보니 그 차에 올라타는 건 그가 아니라 그의 아들인가보다. 젊은 아내와 예쁜 꼬마가 배웅나와 출근하는 아빠에게 나비처럼 손을 흔들고 아빠 또한 처자식에게만 정신이 팔려 차를 소나기 지나간 후의 신록처럼 싱그럽게 닦아놓은 노부에겐 미처 눈길을 보낼 새도 없다. 나는 그게 괜히 민망해 차에 올라 앉은 사내가 옆거울을 보며 지은 부드러운 미소가 저만치 뒤에 처진 아버지한테 보낸 친애의 정이거니 생각하려 든다. 

 아침 산책길에 물통을 든 건 거의 나같은 늙은이들이고 젊은이들은 대개 맨손으로 조깅을 한다. 가족단위로 산책을 하는 모습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조깅을 하던 부녀가 갑자기 멈춰섰다. 아빠가 땅에 공손히 무릎을 꿇더니 딸의 풀어진 조깅화 끈을 단단히 매주고 있다. 그동안 얼굴은 앳돼 보이지만 키는 아빠 어깨에 닿을 만큼 다 자란 소녀는 미안해 하는 기색도 고마워 하는 기색도 없이 다만 공주처럼 천진하고 당당하다. 요새 아빠들 딸 예뻐하는 것은 엄마가 봐도 눈꼴이 실 지경이라고들 하더니만 그게 바로 저런 거로구나 싶어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아침이 아니라 낮의 일이다. 어린이가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유치원밖에 안다닐 것같은 데도 두발 자전거였다. 보조바퀴를 뗀지 얼마 안 된듯 몸의 균형감각이 잘 잡히지 않아 천사같은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 있는 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귀엽기도 하지만 미숙한 솝씨가 곧 도와줘야 할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여 나는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었다. 단지안은 촘촘히 주차한 차와 드나드는 차들 때문에 아이들이 자전거도 마음놓고 탈만하지가 못하다. 그래서 아마 롤러스케이트들을 그렇게 많이 타나보다. 

 차 사이를 요리조리 비집고 다니기에는 그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지만 난 롤러스케이트로 맹렬하게 달려오는 청소년을 보면 겁부터 나면서 내 쪽에서 먼저 방향감각을 잃게 된다. 보조바퀴를 막 뗀 어린이한테도 차뿐아니라 큰 아이의 롤러스케이트도 위협적으로 보일 듯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휘청하더니 주차해 있는 보라색 차에 머리를 꼬나박으면서 자전거와 함께 나둥그러졌다. 아이는 물론 자지러지게 울었다. 어머머머…비명을 지르며 어른이 화급히 뛰어왔다. 그러나 그 어른은 우는 아이는 본 체도 안하고 아이와 부딪친 차체만 여기저기 쓰다듬고 들여다보고 난리였다. 애 엄마가 아니라 차 주인이었던 것이다. 손톱만큼만 긁혔어도 용서 안할 듯 영악하고 단호한 기세였다. 좀 늦게 달려온 애 엄마도 아이가 크게 다친 데가 없는 것을 확인하자 차가 어디 긁힌 데 없느냐고 물어보고나서 떠나갔다. 아아, 그 놈의 차, 사람 나고 차 난 게 아니라 차 나고 사람 난 것일까? 내 자식은 천금같아도 남의 자식은 내 차의 털끝만도 못함인가?

 전업주부도 꼭 차가 있어야 하는 까닭중에 자식 과외공부길을 안전하게 실어날라야 하는 것을 빼놓을 수가 없다. 자식들 중에도 특히 딸자식을 위해서 그 정도의 부모노릇은 필수적이다. 5∼6세의 어린이도 성폭행을 당하는 세상이니 사춘기의 딸자식의 안전에 신경이 써지는 건 당연하다. 제 딸자식이 그런 일을 당한다는 건 생각만해도 치가 떨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전전긍긍하는 것은 으레 딸 가진 부모쪽뿐이고 아들 가진 부모는 마치 딸이 없어 얼마나 다행이냐는 듯 느긋하고 태평스럽기만 한데 그래도 되는 것일까? 딸이 성폭행을 당하면 세상이 끝장나는 게 되고 성폭행을 한 아들은 전도가 양양하단 말인가? 

 우리 자랄 때만 해도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정도의 가해에 대한 경고는 줄창 들어왔다. 그러나 요새 아들 기르는 법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맞고 들어오면 야단 맞고 때리고 들어오면 신통해 한다. 용기와 폭력을 분별하도록 가르치기 전에 무조건  난폭해지도록 부추긴다. 그렇게 기른 아들이 어떤 형태로든 부모에게도 가해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작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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