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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통」·홑옷으로 영하40도 견딘다(시베리아 벌목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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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통」·홑옷으로 영하40도 견딘다(시베리아 벌목장:2)

입력
1994.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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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이종철기자 철통경비뚫고 「엘가」취재/냄비 하나로 6명 취식/「살아서 하산」가장 큰 꿈/손발마다 동상… 그래도 배고픔 더 겁나 시베리아 벌목현장에서 북한노동자들의 꿈은 목숨을 잃지 않고 산(현장)을 내려가는 것이다. 벌목현장에서 작업하는 북한노동자들의 생활은 참혹했던 공산통치하의 「시베리아 수용소군도」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해가는 것」이었다. 한국일보 취재팀은 벌목현장에서 이를 생생히 확인했다.

 벌목현장인 제2사업소 산지중대에 잠입한 취재팀은 가장 먼저 북한노동자들이 먹고 자는 간이숙소, 이른바 「빵통」을 발견했다. 그들은 트레일러를 개조해 만든 벌목현장의 임시숙소를 빵통이라 불렀다. 시베리아의 산림지역은 매서운 혹한지역. 겨울의 평균온도가 인간의 인내한계를 넘는 섭씨 영하 40도. 현장에서 만난 한 벌목노동자는 지난 겨울에 입은 손발의 동상흔적을 보여주며 영하 40도의 혹한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벌목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옷은 1년에 작업복 하나. 이 작업복 하나로 한겨울을 견뎌야 한다.

 빵통은 추위를 피한다기 보다는 눈이나 바람을 막는 정도에 불과했다. 트레일러에 나무판자를 덧씌워 만든 빵통은 혹한을 견디기에는 너무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곳에서 벌목노동자들은 온갖 린치를 당하며 인간 이하의 짐승같은 생활을 해야만 했을 터다.   

 그나마 빵통은 대개 작업현장에서 5백∼6백 정도 떨어져 있다. 간이숙소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트랙터에 매달아 현장에 더 가깝게 끌어갈 수 있지만 작업도중 빵통으로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멀리 설치한다고 한다.

 제2사업소 산지중대에도 빵통과 현장과의 거리는 5백는 족히 되어보였다. 빵통은 러시아에서 제작해준 것과 북한측이 직접 만든 것등 두 가지 종류로 6인용과 2인용이 있는데 취재진이 본 빵통은 러시아제 6인용. 가로 세로 각각 2 4 남짓이고 높이는 3 정도이나 바퀴가 달려 있는 트레일러라는 점에서 생활공간은 사방 2가 채 안돼 보였다.

 빵통 내부에는 정면 벽에 걸린 김일성초상화 보다도 작은 찌그러진 냄비 하나와 밥그릇 몇개가 놓여 있었다. 한 냄비 가득 밥을 짓더라도 빵통 식구인 6명에게는 모자랄 것 같았다. 임업사업소측은 벌목노동자 한 사람당 하루 백미8백을 제공한다고 강변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취사도구가 태부족인 셈이었다. 깡마르고 새까만 얼굴의 또다른 노동자는 『겨울의 혹한도 참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배고픔만은 참기 힘들다』는 말로 그들이 겪고 있는 배고픔의 서러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식량은 부족한 양의 밥과 김치가 고작. 쌀은 북한에서 들여 오지만 「조국의 식량사정」 때문에 태부족이라고 탈출 벌목노동자들이 전했다. 김치는 하바로프스크 또는 임업사업소가 있는 시베리아 곳곳에서 자체 재배하는 채소로 충당된다.

 빵통 한 가운데는 그들이 겨울을 나는 유일한 난방장치인 장작난로가 설치돼 있었다. 취재팀이 벌목현장에 있었을 때는 5월 24일. 아직도 이곳에는 섭씨 1∼2도로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장작난로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고 지붕으로 삐져 나온 연통 위로 연기가 모락모락 새어 나왔다.

◎이웃과 백㎞이상… 탈출해도 죽거나 돌아와/쌓인눈에 빠져 쓰러지는원목 못피해 횡사/당간부들이 방한복폭리… 그나마도 못구해/아슬아슬 벼랑 트럭굴러 참변도 연백여명

 난로주변에는 아무렇게나 팬 장작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어 가뜩이나 좁은 공간이 더욱 비좁아 보였다. 잠을 자는 2층침대 3개는 삼면 벽을 따라 놓여 있었는데 침대 위에는 이부자리가 흐트러져 있었다.

 취재팀이 잠입한 제2사업소 산지중대 벌목현장에는 순식간에 노동자들의 생명을 앗아갈 죽음의 덫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동서남북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울창한 원시림과 가파른 고갯길, 5월임에도 잔설이 있을 정도로 극심한 혹한등이 눈에 보이는 덫이라면 부족한 식량, 과중한 작업할당량등은 보이지 않는 덫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30세 안팎의 한 벌목노동자는 『산림 속의 벌목현장생활 3개월 동안은 끊임없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된다』고 털어 놓았다.

 벌목작업장의 위험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작업현장에서 부닥쳐야 할 위험은 크게 세 가지. 우선 벌목도중 쓰러지는 엄청난 크기의 원목을 피하지 못해 깔리는 경우다. 『넘어지는 나무를 쳐다 보면서 왜 피하지 못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에서는 자기 의지대로 한 발짝도 제대로 옮기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뻔히 알면서 당하는 어이없는 일이긴 하지만 사고가 났을 경우 의료시설만 제대로 갖춰져 있더라도 목숨만은 건질 수 있다』고 아쉬워했다.

 산림 깊숙이 들어갔다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영하 40도를 넘는 혹한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변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탈출벌목노동자는 『우리들은 벌목작업 도중 산속을 헤매다 살아 돌아온 동료들을 부르는 호칭이 있는데 행방불명 7일만에 돌아오면 7일투사, 10일만에 돌아오면 10일투사라고 부른다』며 그들이 추위와 허기 속에 겪어야 하는 고초를 자세히 들려 주기도 했다.

 취재진을 안내한 러시아인 미하일(가명)도 『지난 겨울 사냥을 나갔던 체쿤다 마을주민들이 벌목장의 정반대쪽에서 얼어죽은 북한인을 발견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 희생자는 눈덮인 원시림 속에서 동서남북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벌목장과는 반대방향으로 길을 찾아 나가다 끝내 탈진, 쓰러진 것이다.

 벌목노동자들은 마을에서 무려 1백 이상 떨어진 현장에 한번 올라가면 3개월 동안 먹고 자는 일을 제외하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혹한과 굶주림 속에서 나무베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폭설이 내려 걷기가 힘들어도 할당 책임량을 완수하기 위해 위험한 눈밭으로 내몰린다.

 그러나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벌목작업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지급되는 방한장비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현장에서 주운 해어질대로 해어진 면장갑은 고통스런 실상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 장갑은 한 눈에도 하바로프스크의 자유시장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조악한 중국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해 말 티르마에 있는 제1사업소를 탈출한 한 벌목노동자는 현장사업소에 있는 당간부들이 하바로프스크의 암시장에서 품질나쁜 중국산 옷이나 장갑등을 대량으로 사와 노동자들에게 비싼 값으로 되팔아 착복한다고 했다. 제2사업소 현장노동자들도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당간부들로부터 비싼 값으로 면장갑을 구했을 터였다. 그들은 자연환경 외에도 당간부들의 사리사욕에 2중고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한 벌목노동자는 『1년에 작업복 한벌만 지급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대부분 겨울이 다가오면 당간부들로부터 중국산 방한복을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사입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살 돈마저 없는 일부 사람들은 러시아마을에 방한복을 훔치러 나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벌목현장으로 가는 험한 산길도 벌목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덫중의 하나. 마을에서 벌목작업장으로 가는 길은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비좁고 가파라져 더 이상 도로라고 볼 수 없었다. 산비탈을 깎아 닦은 도로의 한편은 천길 낭떠러지고 다른쪽은 기어오르기 조차 힘든 험준한 산이다. 게다가 구절양장으로 구부러져 있어 현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20∼30는 목숨을 건 곡예운전을 해야 했다.

 이런 길을 원목을 가득 실은 수십톤의 제마즈트럭이 내려 오면 멀리서 보기만 해도 아찔하게 느껴진다.

 원목운반용 제마즈트럭은 원목을 운반하기 위해 트레일러형으로 개조되어 있어 핸들을 꺾을 때마다 뒷바퀴가 절벽아래로 빠질 것처럼 보였다. 겨울철에는 자칫 빙판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체쿤다 마을의 러시아인들은 여러 차례 원목운반용 트럭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전했다.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이처럼 나무에 깔리거나 대형 트레일러의 전복사건등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연평균 1백여명 안팎에 이른다. 사망사고가 났을 경우 유해는 제1연합 산하 9개사업소가 10명 단위별로 수습해 하바로프스크에 모아 한꺼번에 북한으로 운구한다고 한다.【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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