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회의 김 대통령 방러 앞두고 다각논의/연료봉교체 강행의도 점검/“핵물질전용 은폐”-“막판 타결책” 분석/북핵「대증요법」반성 립장 분명히 정리 김영삼대통령주재로 30일 상오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관계장관 회의에서는 북한 핵문제와 관련된 현재의 안보상황이 심각하게 논의됐다. 이날 회의가 소집된 것부터가 김대통령의 러시아등 순방을 앞두고 북한 핵문제가 또 다시 중요한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지금의 상황은 지난 3월 하순 김대통령이 일본 중국방문을 떠날 때와 너무나 흡사하다. 현재 북한은 핵연료봉 교체 강행이라는 또 하나의 핵카드를 가지고 국제사회의 인내를 시험하며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다. 당시에도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영변 방사화학실험실 사찰과정에서 시료채취를 거부, 사찰이 중단되는 국제적 긴장사태를 빚었었다.
북한이 김대통령의 외국방문을 겨냥해 일부러 긴장국면을 조성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정부로서는 곤혹스런 상황일 수밖에 없다. 당시나 지금이나 대통령의 외국방문중에 안보리에서 대북제재문제가 논의되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 더 긴박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도 참석자들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북한 핵문제가 중요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이 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재상정될 경우, 여러가지 예상되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키로 했다. 정부는 북한이 영변 5㎿원자로 연료봉 교체를 강행하고 있는 이유를 대충 두가지 측면으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는 교체연료봉에 대한 사후계측을 어렵게 해 작동을 중단했던 지난 89년 플루토늄을 얼마나 추출했느냐에 대한 파악이 불가능하도록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 북한의 핵물질 전용여부에 대한 판단을 봉쇄하려는 의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둘째는 북한이 흔히 써온 전략대로 사태를 벼랑끝까지 몰고 가 초조해진 미국과의 3단계회담에서 일거에 모든 것을 얻으려 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물론 북한의 의도는 두가지가 혼합된 것일 수도 있다. 정부는 북한이 두번째 이유에서 상황을 일부러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첫번째 이유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첫번째 이유에서라면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서 연료봉교체를 즉각 중단할 것을 북한에 우선 촉구한 것도 수일내에 북한이 핵심부위까지 교체해 버릴 경우 사후계측이 완전히 무산되기 때문이다. 회의에서 특기할 것은 지금까지 우리의 북한 핵정책에 대한 반성론이 대두됐다는 점이다.
즉 그동안 북한이 핵문제를 둘러싸고 교묘하게 약속을 어기면서 상황을 변화시켜 왔는데도 우리정부는 그때마다 단편적으로 대응하다보니 북핵정책에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여 신뢰성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같은 판단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북한을 신뢰해온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북한의 일거수 일투족에 일희일비하며 끌려다니지 않고 확고한 태도를 정해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이에 따라 회의에서는 안보리의 단계별 제재때마다 우리도 분명한 입장을 정해 이를 알리고 확고하게 대처해 가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정한 우리 입장을 미일등 공조체제를 유지해온 각국에 알리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주말 미뉴스위크와의 회견에서 『한반도에 전쟁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 김대통령은 북한이 위기에 처해 돌출행동을 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비하라고 했다. 이는 외국순방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우리정부가 만반의 대비책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려 정부를 믿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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