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언론이 저속하다고 생각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그보다 더 더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성희롱이라는, 클린턴대통령을 겨냥한 우울하고 역겨운 비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미국인들의 대화에 선정적인 내용이 얼마나 많이 퍼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이 확인되지 않은 사건은 의심할 바 없이 곧 TV로 방영되고 앞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질 것이다. 모두 참여하고 싶어하는 이 선전용차량은 그러나 쓰레기차다.
냄새가 난다. 폴라 존스 코빈은 아칸소주 공무원 시절 당시 주지사이던 클린턴대통령이 주정부 후원회의 도중 주경찰을 시켜 자신을 리틀록의 한 호텔로 불러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왜 다음날 싫다고 말하지 않았나.
성희롱으로 고소할 수 있는 6개월의 법정시한동안 그녀는 왜 고소를 하지 않았나. 또 클린턴의 여자관계가 핫이슈가 됐던 선거 유세기간에 그녀는 왜 침묵을 지켰나. 왜 이제서야 말하나.
이 사건이 돈을 노린 것이라는 설과 함께 악취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리틀록의 한 기업가 진술에 의하면 존스의 변호사중 한 명은 클린턴대통령에게 존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공적으로 난처해질 것이라며 대통령의 친구들이 많이 있는 할리우드에 『존스의 일자리를 얻어주는게 좋을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려 했다.
클린턴이 이를 거절하자마자 소송이 제기됐다. 폴라 존스가 바로 문밖에 언론이 있음을 몰랐다면 소송을 제기했겠는가.
저급하고 더러운 주간지나 「새로 등장한 재난」이랄 수 있는 선정적인 TV는 그런 얘기를 조금도 꺼림칙하게 여기지 않는다. 추문을 캐고 더러 조작도 하는 게 그들의 일이다. 이건 새로운 게 아니다. 새로운게 있다면 점잖았던 신문과 방송까지 잽싸게 그 역겨운 얘기를 언급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점이다.
클린턴을 끊임없이 미워하는 측들은 이 소송을 어떻게하면 정치적 무기로 이용할 수 있는지를 알았다. 그들은 지금은 「여성시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진실이 아닌데도 여자들이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법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 추정이다. 여자들이 왜 수치를 무릅쓰고 대중앞에 자신을 드러내겠는가라는 주장이다.
웬디 카미너는 월간 「어틀랜틱 먼슬리」에서 『성폭력은 여성들을 통합시키는 초점이고 이에 대한 일반적인 반론은 데이트 강간이나 성희롱을 당했다는 희생자의 주장을 의심하는 것이다.
때문에 당했다는 주장은 신성불가침이자 절대적인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한 성희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성적인 비행중 많은 사소한 것들이 지나치게 극화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진짜 희생자들의 고통을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일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원치 않은 행동이나 말이 성희롱에 해당된다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 여성들은 이 말에 화를 낼지 모르지만, 원치 않은 접촉은 해고의 위협이나 계속적인 상스러운 대접과는 다르다.
슬픈 사실은 신문들이 그러한 사례들을 증거도 없이 혐의만으로 머릿기사에 올린다는 점이다.
고소당한 사람이 나중에 무혐의로 풀려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성희롱혐의가 벗겨진 뒤에도 의회로 돌아가지 못한 하원의원 피니어스 핀의 경우가 그중 하나이다. 앤터니 트롤로프는 이를 『그는 너무 찢기고 파헤쳐진데다 대중의 따가운 시선에 노출되고 마구 다뤄졌다.
그는 적들을 죽이려고 애써온 치사한 놈밖에 될 수 없었다. 그는 공적인 효용에 필수적인, 내면의 평온이랄 수 있는 자의식의 자유를 더이상 누릴 수 없었다』고 피니어스 핀의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표준이 천박해짐에 따른 대가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 단순히 안됐다고 느끼고만 있으면 안된다. 우리는 정치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법정을 남용하는 것에 맞서 공격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법정소송후 피고가 억울하게 당한 것이 발견되면 원고가 소송비 전액 또는 그 일부를 물게 하자. 그리고 언론이 여론법정의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는 때는 바로 지금이다.【정리=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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