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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청자 11∼17세기 생활용막청자”/문화재전문위원 윤룡삼교수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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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청자 11∼17세기 생활용막청자”/문화재전문위원 윤룡삼교수논문

입력
1994.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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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 「토기-녹청자-청자」 발전 기존학설 반박/고려청자 「중국기원설」 제시 주목 녹청자는 토기가 청자로 발전하는 과정에 나타난 과도기적 형태의 초기청자가 아니라 11세기부터 17세기까지 실생활에 쓰인 독자적 형식의 생활용 청자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주장은 우리의 도자 발전과정을 「토기―녹청자― 청자」로 해석해 온 기존의 학설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고 고려청자 기술의「중국기원설」로 이어져 주목을 끌고 있다.

 문화재전문위원인 윤룡이교수(원광대)는 최근 논문에서『녹청자는 토기에서 청자로 가는 과도기(고려 초)의 시원적인 초기 청자로 알려져 있으나 조선시대까지 널리 제작된 생활용 「막청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청자는 도기질의 흙에 잿물을 씌워 구운 것으로 녹갈색(혹은 고동색)을 띠면서 표면이 울퉁불퉁한 조야한 형태의 청자인데 통일신라말의 토기가 고려청자로 자생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윤교수는「고려·조선시대 사기그릇 특별전」(6월17일까지 연세대 박물관) 도록에 실은 논문「녹청자·흑유·석간주」에서 이같은 기존의 견해를 반박하고 있다.

 그는『우선 수집 녹청자들에 대한 제작연대 연구결과 이들이 고려초(10, 11세기) 뿐 아니라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제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져 실증적이고 직접적인 증거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이 글은 84년부터 88년 사이에 진행된 용인 서리의 「고려백자 요지」발굴 결과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예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유적에서는 4개 층으로 이루어진 6의 퇴적층이 발견됐는데 가장 오래된 퇴적층(10세기 후반 추정)에서는 녹청자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고 대신 중국식 벽돌 청자가마가 발견됐으며 중간 층위에서는 청자류 파편들이, 시대적으로 가장 뒤떨어진 맨 위 층위에서「녹청자」들이 발굴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밖에 황해남도 봉천 원산리 요지 발굴 결과(91년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조사) 등 최근의 발굴 결과들을 추가하고 있다.

 또한 그는 고려청자 기술이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10세기말 고려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오월국의 발달한 청자기술을 수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녹청자를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또 녹청자의 존재를 근거로 청자기술이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아왔다.【서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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