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덫에 걸린 도시 이야기 다양한 소재와 공연양식의 소개로 서울의 연극계가 활기를 띠고 있는 이즘에 인천에서는 시립극단이 전열을 가다듬고 지역연극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10여년간 미국에서 활동하다 극단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승규는 스위스 작가 듀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을 「낸시 차여사 고향에 돌아오다」로 번안, 공연하면서 인천의 시민들에게 묻는다.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얼마큼의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을까.
이유를 알 수 없는 경기침체에 시달려온 가상의 도시 경인시, 그곳에 오래전 고향을 떠나 세계적 부호가 된 낸시 차여사가 금의환향하여 천억을 희사하겠다고 선언한다. 가난에 찌들은 시민들은 그녀를 구원자로 찬양하는데 그녀는 놀라운 조건을 제시한다. 그 돈은 수십년전 자신을 이 도시에서 쫓아내다시피한 옛애인 안동선을 죽이는 대가라고. 시민들은 경악하며 그 요구를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차츰 돈의 유혹에 빠져들고, 경인시의 회생이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아는 안동선은 좁혀드는 덫을 느끼며 마침내 희생양이 될 것을 동의한다. 낸시 차는 준비해온 관에 그의 시신을 넣어 떠나고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경인시에서 사람들은 세련된 모습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물질의 유혹에 허물어지는 인간의 모습을 진지하게 드러내는 공연이고, 한국 산업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감당해온 인천시민을 겨냥하기에는 시의 적절한 작품선정이다. 다만 극해석에서 원작의 희·비극성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원작에서는 극이 진행되는동안 남편을 셋씩이나 갈아치우는 여주인공을 통해 돈의 위력의 과시를 희화하고 있는 반면, 시립극단은 무당의 딸로서 과거의 일에 복수하려는 여인의 집념만을 보여주고 있어서 극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어둡다. 그에 따라 물질의 파괴적 속성, 그 가운데 과연 이 여인은 옛애인의 죽음만으로 만족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가져오는 비극성은 삭제되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고르게 안정돼 있어 지역연극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하게 하는 공연이다.
인천종합문화예술개관 기념에 때맞춰 「지방연극이란 없고, 다만 연극이 있을 뿐」이라고 선언하는 시립극단의 발돋움을 격려하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연극의 역할에 대한 그들의 비전과 예술적 역량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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