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책받고 귀국후도 유흥가 전전/이틀전 칼·휘발유 등 미리 준비/박군 진술모순… 경찰,공범추궁 부모를 살해하고 범행 은폐를 위해 불까지 지른 미국 유학생 박한상군(23)사건은 우리사회의 비뚤어진 교육열과 자녀 과보호, 신세대의 물질만능풍조등 총체적인 사회병리현상에 대한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범행동기◁
박군은 지난해 8월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시에 있는 퍼시픽대 어학연수과정 재학중 라스베이가스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2천만원(미화 2만3천달러)을 잃었다. 돈이 떨어지자 그는 지난 4월20일 부모 몰래 귀국, 조흥은행 제기동지점에서 BC 마스터카드를 발급받아 신용카드 할인대출을 통해 사채업자로부터 2백10여만원을 장만했다. 친구들과 유흥가를 드나들다 아버지 박순태씨(47)에게 들켜 꾸중을 듣고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안 박씨가 지난 10일 『미국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하라』고 질책하자 재산 상속을 노려 부모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범행◁
지난 13일 귀국한 박군은 16일 서울 종로구 종로3가 세운상가에서 등산용칼을, 강남구 신사동 모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 자신의 침대 밑과 차고에 숨겨두고 범행기회를 엿보았다. 이틀뒤 같은 집에 사는 이모(43)부부가 여행을 떠나자 범행을 결행했다. 19일 0시10분께 부모가 잠든 것을 확인, 알몸에 운동화만 신은채 등산용칼과 과도로 아버지는 50번, 어머니 조순희씨(43)는 40번을 찔러 살해하고 세면대에서 몸에 묻은 핏자국을 씻었다. 이어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휘발유를 안방에 뿌린 뒤 등산용 칼과 휘발유통등을 아버지 차에 싣고 5백여 떨어진 공터에 버리고 돌아와 화재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 불을 지른 뒤 화재신고를 했다.
▷범행후 행적◁
범행당일 아침 화상치료를 받고 돌아온 박군은 경찰의 화재감식이 시작되자 수사에 협조하는체 작업을 거들기도 했다. 부모 장례식때는 하관식을 보지 않겠다고 버티다 실신해 친척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례가 끝난 날 『아버지 인감을 내게 달라. 내가 한약방을 직접 운영하겠다』고 말해 친척들을 놀라게 했다. 큰아버지 집에 있는동안 미국의 친구등에게 전화를 거는 여유도 보였다.
▷수사◁
경찰은 소변이 마려워 깨어났다가 불이 난 것을 알았다는 박군이 사촌동생(12)을 남겨둔채 혼자 빠져나온 점, 사건직후 박군의 머리카락에 피가 묻어 있다는 병원측의 진술등을 근거로 박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 형사들을 주변에 잠복시켰다. 경찰은 피해자의 아들이란 점 때문에 추궁을 못하고 감시하며 주변 수사만 하던중 24일 박군의 큰아버지(50)가 박군 오른쪽 종아리에 이빨에 물린 듯한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오고, 범행직후 입고있던 반바지에서 혈흔이 발견되자 26일 0시25분께 큰아버지 집에서 박군을 연행, 쉽게 범행일체를 자백받고 등산용 칼을 찾아냈다.
▷의문점◁
박군은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경찰은 혼자서 두사람을 90군데나 찔러 살해했다는 진술에 의문을 품고 공범이 있는지를 추궁중이다.
경찰은 박군과 최근까지 친하게 지낸 국교동창 7명, 박군의 애인인 모여대생, 숨진 박씨와 재산상의 갈등을 빚어온 친척들중 공범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특히 박군이 맨손으로 발가벗고 범행했다고 진술했으나 범행현장에서 피묻은 면장갑과 러닝셔츠가 발견된 점을 중시, 박군을 집중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또 박군이 미국에서 사귄 친구 김모군에게 부모를 살해할 생각을 알린 사실을 밝혀내고 사건관련 여부를 조사중이다.
경찰은 이와함께 박군이 마약을 복용하고 환각상태에서 잔인하게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박군의 혈액과 소변을 채취,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감정을 의뢰했다.【박천호·염영남기자】
◎박군 유죄확정땐 상속 못받아/민법규정따라
1백억원대에 이르는 부모의 재산을 노려 존속살인죄를 저지른 박한상군은 유죄가 확정되면 단 한푼의 재산도 상속받지 못하며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을 면치 못하게 됐다.
민법 1004조는 「고의로 직계존속이나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자나 동순위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형법 250조는 존속살인죄의 법정형을 사형 또는 무기징역으로 제한하고 있다. 한상군이 정신감정결과 심신미약판정을 받아 형이 감경되더라도 최소 징역 7년의 중형을 받게 된다.
◎범인 일문일답/“호적 파가라” 혼난뒤 살해 결심/털어놓고나니 후련… 그저 죄송할뿐
―범행동기는.
『유학중 많은 돈을 쓴것이 발각돼 아버지로부터 「호적을 파가라. 너는 아무것도 못할 놈이다」고 꾸중을 들었고, 돌아오자 「한국에서도 속만썩이더니 유학가서도 그 모양이냐」고 야단치며 미국에 다시 안보낸다고 해 살해를 결심했다. 부모님이 안계셔야 재산상속이 빨리 될 것으로 생각했다』
―수십차례씩 찌르고 불까지 지른 이유는.
『양손에 칼을 든채 마구 휘두른것 외에는 아무 기억이 안난다. 영화에서 본것이 기억나 단순강도로 위장하기 위해 불을 질렀다. 나도 화상을 당하면 경찰이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불을 지를 때 사촌동생이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동생은 불이 날 때까지 자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모를 것이라고 판단, 불에 타 숨지거나 구출돼도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범행뒤 어떤 일을 할 생각이었나.
『미국에 다시 가거나 한국에서 사업을 할 생각이었다. 아버지 사업은 인수할 자신이 없었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부모의 간섭이 없어 자유스러워 좋았다. 향락과 도박의 유혹이 늘 있었다. 처음에 재미삼아 도박장에 다니다 많은 돈을 잃어 꾸중을 들을 것이 겁나 이를 만회하려고 계속 도박을 하게 됐다』
―지금의 심정은.
『범행직후부터 후회했다. 그동안 잠못자며 고민해왔는데 털어놓고나니 후련하다. 그저 부모님께 죄송할 따름이다』【염영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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