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시간 지하철역의 인파에 휩쓸려 본 사람이라면, 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서울 인천 수원에서 오가는 열차들이 만나는 지점인 신도림역이나 구로역에 나가 보라. 밀고 밀리는 가운데 이 몸 하나 보전하여 어디로든 시간에 맞춰 가야 한다는 것 이외에 무엇을 따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시인은 다르다. 그는 인파에 휩쓸리면서도 그 인파의 바깥쪽에 서서 인간들이 모여 이룬 비인간적인 살풍경을 꿰뚫어 본다. 말하자면 시인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추상적인 지하철 체험은 구체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 이재무씨의 「신도림역」 (「현대시」 5월호)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우리는 우선 시인의 시선이 「신도림역」의 인파가 아닌 <살찐 쥐 한마리> 를 향하고 있음에 주목할 수 있다. <검고 칙칙한 지하선로> 를 배경으로 한 <살찐 쥐 한 마리> 가 연상시키는 것은 물론 도시의 지하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 하수도다. 하수도에서 <태평하게> 자기 삶을 사는 쥐와 마찬가지로, 지하철의 <쥐> 는 <누군가 검붉은 침을, 아직 불이 살아 있는 담배꽁초를 그의 목덜미께로 뱉고 던> 지거나 <전방 500화물열차가 씩씩거리며 달려> 와도 <동요하지 않는다> . <동요하지 않> 은 채 <선로를 가로질러 태평하게 저 갈 곳을 가는> 쥐가 시인의 눈엔 <나보다도 서울을 잘 살고 있> 는 것으로 비쳐진다. 나보다도 서울을> 선로를 가로질러 태평하게 저 갈 곳을 가는> 동요하지 않> 동요하지 않는다> 전방 500화물열차가> 누군가 검붉은 침을,> 쥐> 태평하게> 살찐 쥐 한 마리> 검고 칙칙한 지하선로> 살찐 쥐 한마리>
사실 이 정도의 관찰은 누구에게나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의 예리한 시선은 마지막 한 행을 가능케 하고, 이로 인해 우리의 <태평> 한 시 이해에는 충격이 가해진다. <한 무리의 쥐들이 열차에 오른다> 라는 이 구절로 인해, 사람들과 쥐 사이의 구분이 무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태평하게 저 갈 곳을 가> 면서 <서울을 잘 살고 있> 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들 인간인 것이다. 서울을> 태평하게 저 갈 곳을 가> 한 무리의 쥐들이 열차에 오른다> 태평>
날카로운 관찰과 선명한 시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재무씨의 시와 관련하여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이 시의 <500M>이라는 표현을 과연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물론 「오백미터」로 읽어야 하겠지만, 「오백엠」으로도 읽힐 수 있다. 미터를 나타내기 위해선 소문자 「」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사실 익명을 나타내기 위한 알파벳 자모나 「APT」와 같은 외래어 약자들이 우리 시에 사용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관례가 정치한 언어의 구사라는 시인의 작업을 무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시란 시각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청각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장경열 문학평론가·서울대영문과교수>장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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