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인권 불공정거래/유주석(메아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인권 불공정거래/유주석(메아리)

입력
1994.05.24 00:00
0 0

 대한항공 김부기장(47)은 지난 4월20일 미국 LA행 비행근무를 마치고 숙소부근 공원을 산책하다 봉변을 자초했다. 귀엽게 생긴 미국 여자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이 어린이는 비명을 질렀고 김씨는 얼떨결에 그 입을 손으로 막으려 했다. 근처에서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의 신고로 그는 경찰에 붙들려 성추행혐의로 한달이 넘도록 조사를 받고 있다. 대한항공측은 변호사를 선임해 한국인의 문화와 관습을 들어 이해와 선처를 호소하고 있으나 현지 경찰은 막무가내로 형사처벌을 강행할 기세라고 한다. 그보다 한달전인 3월21일 영동 고속도로 이천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주한 미육군 통신대소속 사병이 운전하던 스리쿼터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작가 최인호(49)는 척추뼈가 다치는 중상을 입었으나 가해자는 대파된 차체수리비나 치료비를 단 한푼도 지불하지 않는 것은 물론 사고후 얼굴조차 한번 볼 수가 없다. 가해자 형사처벌은 둘째치고 1백% 일방적으로 당한 경제적 피해를 보상받는데도 국가배상청구, 미군과의 협의심사등 절차를 거치는데 1년이 족히 걸리고 배상액이 미흡할 경우 다시 정해진 절차를 밟아 민사소송을 벌여야 한다. 웬만한 사람은 엄두를 못낸채 지레 포기하기가 십상이다.

 67∼91년사이 25년간 주한미군 범죄4만4천7백66건중 한국측 재판권행사는 2백73건, 전체의 0·6%에 불과하다. 이러니 미군들 사이에 한국이 범죄의 천국으로 통한다는 이야기마저 나올 만하다.

 2년여의 협상끝에 지난91년 개정된 「한미행정협정」(SOFA―주한미군지위에 관한 협정)은 「합의양해사항」과 외무장관―주한 미대사간 「교환 서한」등 재판권행사를 가로막아온 두가지 부속 문서를 폐기하고 대부분 미군 범죄자를 한국이 재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현행 SOFA에도 현실적으로 재판권행사를 어렵게 하거나 무력화시키는 「독소규정」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재개정을 촉구하는 민간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미군요청때 한국측 재판권 포기 가능 ▲한국측 재판절차 끝날 때까지 미군이 피의자신병관장 ▲한국 재판후 징역형 복역자라도 미국측 신병인도요청때 「호의적 고려」▲한국내 복역시설은 미국 요구 최소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등이 그것이다.

 동두천 미군클럽 여종업원 윤금이살해사건의 범인 케네스 마클 이등병(22)이 대법원의 15년형 확정판결후 지난주 17일 평택 미군구치소에서 신병이 넘겨져 천안교도소에 수감됐다. 미군범죄자의 한국내 행형집행은 분명 SOFA이행의 진전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런 큰사건말고 늘어나는 미군의 일반범죄나 사고의 피해자들이 피해를 보상받을 길은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막혀있다. 한미 인권의 공정거래를 위해 SOFA의 문제조항을 고치려는 노력과 함께 우리 정부, 특히 수사당국은 수사·재판권을 적극 행사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당장 미군범죄의 예방효과를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생활과학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