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 영향… 수사기록 검증불가”국방부·법원/“본인동의서 없는 계좌추적 무리”은감원/여 은근히동조 야 “국회권한 도전행위” 흥분▷국방부◁
상무대 국정조사가 첫날부터 호된 시련을 겪고 있다. 조사대상기관들이 잇따라 국회의 문서검증과 자료제출요구를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회에 대해 「항명」의 깃발을 내건 기관은 국방부, 법원, 금융기관등. 검찰 및 군검찰의 수사기록과 법원·군사법원의 재판기록제출, 계좌추적을 위한 예금자료제출등이 현재 부각돼 있는 핵심현안들이다. 이들 기관들은 「재판에의 영향우려」 「실명제 긴급명령상 비밀보호의무」등 나름대로의 법적 근거를 내세우며 이를 거부, 국정조사를 초반부터 뒤뚱거리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협상단계에서부터 「법적으로 무리한 요구」라는 견해를 보였던 여당은 은근히 조사대상기관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반면에 야당은 『법적, 정치적으로 모두 국회요구는 타당한 것』이라는 입장아래 여당과 기관들을 싸잡아 공격하고 있다. 결국 협상과정에서 벌어졌던 여야간의 1라운드에 이어 야당과 조사대상기관들간의 「2라운드 법리논쟁」이 본격화된 셈이다.
23일 하오2시께부터 자정까지 4차례나 정회를 거듭하며 국방부 제1회의실에서 벌어진 국방부 문서검증은 국방부의 수사·재판기록제출거부문제와 국회보고문서의 축소·은폐의혹등이 주된 쟁점이었다. 조사에서 야당측은 소속의원 전원이 나서 공세를 편데 반해 여당은 거의 입을 열지 않고 야당과 국방부의 실랑이를 「방청」해 대조를 이뤘다.
국방부는 의원들 앞에 50여권의 각종 일반서류철과 상무대사업계획서등 2종류의 비밀서류등을 내놓았으나 미처 일문일답준비는 하지 못한듯 했다. 이를 반영하듯 이병태 국방부장관은 야당의원들이 즉답을 요구하며 질문공세를 펼칠때마다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시간을 달라』 『질의를 더해보라, 생각해 보겠다』는 식으로 뒤걸음만 쳤다.
이날의 첫번째 논쟁은 국방부가 야당이 핵심자료로 지목해 요구한 군검찰의 조기현 전청우종합건설회장 수사기록과 군사법원의 상무대비리관련 공판기록 및 수사기록, 압수수색 발부대장등을 내놓지 않아 비롯됐다.
이장관은 이에 대해 법이론적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재판에 간여할 목적은 없다고 하더라도 재판의 공정성을 해할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를 댔다.
야당측도 법리 및 정치적으로 총공세에 나섰다. 먼저 간사인 강철선의원은 『상부의 지시를 받고 내린 결정이냐』고 고위층의 개입여부를 의심했다. 이에 이장관은 『법정신에 근거한 법무관리관의 건의를 받고 내가 결정했다』며 재판에의 영향 및 사생활침해가능성만을 거듭 이유로 제시했다.
이러자 정대철 강수림의원등이 차례로 나서 『국방예산비리가 어떻게 사생활인가』 『국회가 언제 재판에 간여한다고 했느냐』고 캐물었다. 또 정기호의원과 유수호의원(국민)등은 『국방부행태를 보면 지금이 도대체 몇 공화국인지 의심이 간다』 『국정조사가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구체적인 근거를 대라』고 국방부를 몰아세웠다.
그래도 이장관이 물러서지 않자 야당은 비장의 카드인 「고발가능성」으로 엄포를 놓았지만 허사였다.
재판기록에 대한 문서검증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야당은 전술을 바꿔 하오8시45분께 속개된 저녁회의에서는 국방부의 「문서축소, 은폐의혹」을 집중 부각시키려 했다. 강수림의원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국방부가 지난 3월 나병선의원에게 제출한 군검찰수사기록 요약본과 민주당이 별도 입수한 수사기록 내용이 틀리다』며 국방부의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이장관이 『시간을 달라』며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해 3번째 정회가 선포됐다.
이어 하오10시20분께 다시 시작된 회의에서도 정의원등은 『조기현회장이 YS(김영삼당시 민자당대통령 후보)에게 10억원을 줬다고 말한 사실이 왜 국회보고내용에 들어있지 않느냐』고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에 이장관이 『일부 진술은 전문에 불과해 신빙성이 없어 요약에서 뺐다』고 애매모호하게 해명한 것이 자충수였다. 강수림의원등은 곧바로 『그렇다면 이경훈 전청우종합건설경리이사가 육참총장공관에서 이진삼 당시 총장에게 3천만원을 건네줬다고 말한 부분은 전해들은 게 아니라 직접적인 사실인데 왜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몰아붙였고 이장관은 말문이 막혀 다시 4번째 정회가 선포됐다.
야당과 이장관이 격돌하고 있는 사이 여당측은 『우리는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재판서류제출요구에 동의했다』 (함석재의원)는 식의 면피성 발언이나 간간이 하며 수수방관했다.【신효섭기자】
▷법원◁
서울형사지법(원장 신성택)은 상무대사건의 재판관련자료에 대한 국회의 검증요구자체가 법률적으로 무리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법원은 검증요구를 거부키로 결정하면서 이례적으로 법원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 정치권의 반발과 여론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서울형사지법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정감사및 조사에 관한 법률 8조는 「감사 또는 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중인 재판 또는 수사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회가 의혹해소차원에서 수사및 공판기록에 대한 문서검증을 요구했지만 재판계류중인 이 사건의 양형이나 심증형성에 영향을 미칠수 있기때문에 응할수없다』고 밝혔다.
서울형사지법은 이같은 법률적 판단을 바탕으로 거부방침을 세우고 이날 상오 이례적으로 전체법관회의를 열고 「법관의 총의」로 결정했다는 형식을 갖추었다. 이날 회의에서 대부분의 판사들은 『헌정사상 드물게 여야합의에 의해 정치자금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키로 한 국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지만 엄연히 삼권이 분립된 민주주의국가에서 재판에 영향을 미치면서까지 국회의 요구에 응하는 것은 국회와 사법부의 관계에 좋지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반대의견을 표시했다.【이희정기자】
▷은감원◁
은행감독원은 금융실명제 긴급명령상 수표등 금융계좌추적은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은감원의 이같은 판단은 긴급명령 4조에 따른 것으로 이 조항은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금융기관은 금융거래의 내용에 대해 밝힐 수 없다」고 규정하고 다만 몇가지 경우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예외조항이란 ▲법원영장 ▲조세법상의 제출의무 ▲금융기관 감독검사 ▲금융기관간 정보상호교환 ▲법률상 불특정다수인에게 공개의무가 있는 경우등이다.
이 경우 「금융기관 감독조사」조항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조사대상자의 인적사항 및 특정점포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토록 돼있고 목적도 은행의 건전한 경영이나 신용질서 유지등으로 한정되어 있어 계좌추적조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은감원의 입장이다. 외부요청에 의한 계좌조사는 현행 법률상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 다른 법률과 상충될 때에는 실명제 긴급명령이 우선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은감원 관계자는 『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입법부가 무리한 요청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계좌추적 요청자체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경우와 비슷한 지난해 공직자 재산 파동때도 공식적인 요청이 없었다.
은행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주택 국민 상업 제일 한일은행등은 아직 국회로부터 정식 요청이 없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실명제 긴급명령등 법적인 문제가 있어 곤란하다는 판단이다. 은행들은 국회가 예금주 본인의 동의서나 수색영장등 법적 요건을 갖추어 자료제출을 요구할 경우에 한해 응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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