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덕 국무총리가 서울지역의 하위직 공무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앞으로는 복지불동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하자고 선언했다. 오늘의 공직사회를 뒤덮고 있는, 적당히 일하며 엎드려서 눈치나 살피고 보신하는 풍조가 없어진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하지만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뿌리깊은 고질이 치유되지 않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정부는 용어를 안쓰고 추방선언하는 것도 좋지만 원만한 국정운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공직사회의 나쁜 풍조들을 바로잡는데 한층 다각적인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복지부동이란 용어를 추방하려는 이총리의 간절한 생각을 모르는 바 아니다. 앞서 정부는 지난 9일 공직사회 쇄신책을 발표하면서 모든 공무원을 한데 묶어 질책하는 뜻이 담긴 이 말의 사용을 자제하기로 했고 또 14일 각 부처감사관회의에서도 공무원 스스로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라며 이 말을 쓰지 않기로 결의한 얘기를 듣고 있다. 그런데 복지불동이 모욕적인 표현이라며 대신 전래의 「무사안일」 「적당주의」라는 말을 쓰기로 했다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용어는 시대상과 세태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인 만큼 오히려 자책과 반성의 계기로 삼는 쪽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
이날 하위직 공무원들이 쏟아놓은 얘기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특히 대다수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데도 복지부동이라며 지나친 공격과 비판에 좌절감을 느낀다는 대목은 간과할 수 없다. 문제는 90여만명의 공무원중 소수의 사람들이 위법행위로 공직분위기를 흐리고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공직비리의 발생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문민시대에도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어 국민의 불신은 만만치가 않다. 예를 들어 각종 인허가사무중 최근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치고 있는 아파트 빌딩등 각종 공사의 불실만 해도 그렇다. 만일 관과 공무원들이 눈을 부릅뜨고 공사를 감리·감독했다면 어떻게 부실공사란 말이 나올수 있었겠는가.
병을 고치려면 먼저 병인을 정확하게 진단한 다음 거기에 맞는 처방을 내야한다. 오늘 공직사회의 복지부동병은 감기나 소화불량 정도의 일과성 단순증세가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된데다 시국까지 가미된 뿌리깊은 병이다. 즉 눈치보기·무사안일등의 병폐가 위로는 장관등 기관장에서부터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번져 있다. 자발성 창의력 희생적 봉사정신등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정부가 공직쇄신책을 발표, 당근과 포용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로는 대통령과 총리·장관에서부터 말단 기관장에 이르기까지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공정무사한 인사, 처우개선의 현실화를 하나하나 실천하고 공직자들도 일어나 열심히 일하게 될 때 복지부동이란 말도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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