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상처가 있었으나…”/수행관계자 “사과뜻… 문민 신외교”/민감사안… 외무부 “예우차원” 축소 베트남을 방문중인 한승주 외무장관이 20일 레 둑 안 베트남국가주석을 예방한 자리에서 언급한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관련발언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해석과 함께 논란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외무부는 한장관의 발언에 관해 몇몇 언론이 정부차원에서 「유감」이나 「사과」의 뜻을 베트남측에 공식표명한 것으로 보도하자 서둘러 현지공관을 통해 진상파악에 나서는등 매우 당황해 하는 기색을 보였다.
외무부는 한장관이 레 둑 안 국가주석에게 『한국과 베트남의 양국관계는 과거에 상처가 있었으나 이를 치유·극복하려는 상호노력으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외무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가주석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덕담을 한 것이 와전된 것』이라면서 『한장관도 본국과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은 배려에서 과거사를 거론했던 것이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또 청와대의 한 고위당국자도 『베트남정부가 한국의 참전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적도 없고 우리 정부도 사과한다는 방침을 정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즉 한장관의 발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한장관을 수행중인 한 관계자는 현지에서 배경설명을 통해 『우리도 문민정부가 선 만큼 스스로 먼저 과거사에 대해 언급하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부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국자는 한장관의 발언을 「사과」의 의미로 인정했고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게」 이른바 문민정부의 새로운 외교상이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지의 분위기는 한장관의 「과거의 상처 운운」발언에 대해 베트남 국민은 『유감 내지는 사과』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임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외무부는 이같은 내용의 현지설명에 대해 수행관계자의 「무신경」을 비난하면서 한장관의 발언의미를 「방문자의 예의」 수준으로 축소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한일관계의 과거사문제를 의식, 『한장관의 발언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에 대한 언급이 없는 그야말로 「미래를 위한 화해」의 수준』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외무부는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둘러싸고 정부내에 이견이 있는 것처럼 비쳐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베트남전은 과거의 냉전시대에 자유세계와 공산세계가 맞싸운 전쟁으로서 한국의 참전은 당시 지역안보와 자유수호라는 뚜렷한 명분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로서는 베트남에 사과할 이유가 없고 사과가 양국관계의 발전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지난 92년12월 한-베트남 수교 당시 이상옥 외무장관도 『과거에 불행한 사실이 있었다』고만 언급하는데 그쳤고 이후 몇 차례의 관련발언도 「과거의 역사에 주목한다」는 수준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외무부의 설명이다. 국가간의 공식적 사과행위는 책임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배상문제는 물론 당연히 참전의 정당성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외무부가 『베트남에 대한 과거사 언급문제를 일본의 대한사과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고 나오는 것도 이러한 민감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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