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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인생 기구한운명 「세기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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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인생 기구한운명 「세기의 연인」

입력
1994.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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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64세로 가다/권·부누렸지만 두남편사별아픔/잡지사 기자때 케네디만나… 31세에 퍼스트레이디로/오나시스 유산싸고 법정싸움… 말년엔 보석왕과 동거 빼어난 미모와 지성으로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숱한 화제를 뿌리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향년 64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란 이름에는 그녀의 화려한 인생역정과 기구한 운명이 그대로 함축돼 있다. 케네디는 아메리칸 드림을 외친 전대통령 존 F 케네디, 그리고 오나시스는 그리스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를 딴 것이다.

 그녀는 한 여자로서 소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유했고 온 여성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행복한 여자였다. 그녀의 인생은 새남자를 만날 때마다 바뀌었다. 그녀는 또 두명의 남편과 사별했다. 그 점에서 이 세상 어느 여성보다도 불행한 여자이기도 했다. 「절반은 실패」였던 인생인 셈이다.

◆어린시절

 재클린은 1929년 6월28일 뉴욕주 휴양도시인 사우샘프턴시에서 아버지 존 부비어 3세와 어머니 재닛 리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깜찍한 외모와 행동으로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독차지했으며 특히 글짓기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11세때 부모가 이혼한 것은 어린 그녀에게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재키는 그녀의 적성을 좇아 47년 조지워싱턴대 불문과에 진학, 52년에 졸업한 뒤 한 잡지사의 기자로 일했다. 그것은 새로운 인생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그해 여름 한 디너파티에서 야망과 패기를 지닌 매사추세츠주 하원의원이었던 한 젊은이를 취재하게 됐다. 둘은 얼마후 결혼했으며 이때 나이 24세, 남편 케네디는 36세.

◆퍼스트 레이디 

 그녀의 기자생활은 그후 남편의 각종 연설문작성에 큰 도움이 됐다. 케네디의 『국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줄지 기대하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것인가 생각해보라』는 유명한 연설문도 그녀가 조언했다고 한다. 케네디는 60년 미대통령중 최연소인 43세로 35대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녀도 하루아침에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조용한 성격이었고 조용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남편보다 한걸음 뒤에 섰다. 재키는 『왜 뒤켠에 머물러 있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내가 나서길 원할지 모르지만 원래 나서거나 주목받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케네디암살과 언론의 추적

 화려했던 인생에 첫번째 그늘은 너무도 빨리 찾아왔다. 63년 11월22일 텍사스주 댈라스에서 남편과 함께 리무진을 타고있을 때였다. 수발의 총성이 울렸고 케네디는 그자리서 쓰러졌다. 싸늘한 남편의 시신과 함께 워싱턴에 돌아올때 재키는 남편의 피로 얼룩진 옷을 여전히 입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은 비극적인 인생스토리의 한장에 불과했다. 세명의 아들중 하나는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또 한명은 사산했다. 또 시동생 로버트 케네디도68년 남편처럼 대통령유세도중 암살당했다.

 그녀는 조용히 살길 원했지만 언론의 집요한 공세는 그녀를 평범한 자연인으로 머물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원치않는 사진기자의 플래시에 의해, 때로는 부풀려진 기사에 의해 그녀는 수없이 고통을 겪었다. 그녀는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종종 선글래스를 끼고 긴머릿수건을 두르고 다녔으며 실제 그후 25년동안 단한번의 인터뷰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백만장자 오나시스와의 재혼

 그러던 「재클린 케네디」가 68년 「재클린 오나시스」가 되겠다고 전격발표하던날 미국인들은 경악했다. 이때 대부호 오나시스의 나이는 62세의 인생황혼기. 「영원한 케네디미망인」으로서 머물길 원했던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으며 언론들은 『돈에 눈이 어두워 결혼했다』며 온갖 비난을 퍼부어댔다. 사실 그녀는 돈과 결혼했다. 재키친구들은 『케네디가로부터 독립을 위해 재키는 돈이 필요했다. 인생을 묻어두기엔 너무나 젊은 나이였다』며 그녀를 동정했다.   

 두번째 남편은 7년후 69세로 사망했으며 2천만달러의 유산을 상속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재산상속문제로 오나시스가와 기나긴 법정싸움을 벌였고 이는 미국인들을 실망시켰다.

◆템펠스먼과 만남, 그리고 투병생활

 상속으로 갑부가 된 그녀는 그후 출판사편집장으로 일했으며 틈틈이 센트럴파크에서 아침 조깅을 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꺼려오던 재키는 금년2월 처음으로 자신의 지병을 공개했다.

 19일 그녀의 임종에는 한노신사가 자리를 지켜 관심을 모았다. 뉴욕의 「다이아몬드왕」인 백만장자보석상 모리스 템펠스먼씨(65). 그는 88년부터 현재 아파트서 동거하며 그녀를 병구완해 왔다. 재키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마지막 삶의 희망을 불태우며 재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역대퍼스트레이디중 아직도 가장 사랑받고 있는 「전미국인의 연인」이다. 재키는 떠났어도 영원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이미지이든 강하게 남아있을 것이다.【조상욱기자】

◎재키 떠나던 날/새 「연인」·두자녀만이 아파트서 임종/클린턴 “용기와 기품의 표상” 애도

 ○…재클린은 두자녀와 말년에 사귄 세번째 「연인」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았다.

 첫남편인 고 존 F 케네디대통령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존 F 케네디 2세와 딸 캐롤라인 케네디 쉴로스버그등 두 자녀와 두번째 남편인 선박왕 오나시스와 사별후 친구관계로 사귀기 시작한 오랜 「연인」인 모리스 템펠스먼등 세명만이 뉴욕 아파트의 병상에서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았다.

 이에 앞서 재클린의 죽음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자 19일 아침부터 그녀 아파트에는 일가친척들이 잇따라 방문, 그녀와 마지막 대면의 기회를 가졌다.

 재클린이 눈을 감기 45분전인 하오 9시30분께 그녀의 여동생인 리 라지윌이 재클린의 이복형제인 제임스 리 오틴클로스와 함께 아파트를 찾아와 잠깐 머무르다 눈물을 흘리며 아파트를 떠났다. 임종 2시간전에는 재클린의 시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상원의원이 꽃다발과 캔디를 들고 아파트에 와 그녀에게 『내일 다시 보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재클린은 병원에서 자택으로 귀가한 다음날인 19일 아침 임종을 앞두고 병자성사를 받았다. 이 날 병자성사는 가톨릭 뉴욕지역교구의 조지 바데스신부가 집전했다.

 재클린은 지난 1월 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이라는 진단을 받은후 그동안 화학요법등의 통원 치료를 받아왔다. 이 병은 치료가 가능한 것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 치명적인 상태로 전이되기도 한다는것.

 ○…재클린은 두번 결혼했지만 자녀는 고 케네디대통령과의 사이에서만 두남매를 두었다. 장녀인 캐롤라인 케네디 쉴로스버그는 소설가 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결혼한지 8년이 돼 어린 세 자녀가 있다. 아들인 존 F 케네디 2세는 앞으로 정계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전도유망한 변호사로 활약중이다.

 이들 두 자녀는 사촌들, 즉 고 케네디대통령의 조카들과는 달리 아주 모범적인 생활을 해 매스컴등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의 죽음은 전미국을 슬픔에 잠기게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조사에서『비극을 맞아서도 그녀는 오히려 가족과 우리 국민들의 슬픔을 조용한 힘으로 가시게 해주었으며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고 말하고 『그녀는 미국인과 전세계인에게 용기와 기품의 표상이었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뉴욕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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