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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와 연대(김지하칼럼/살림의 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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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와 연대(김지하칼럼/살림의 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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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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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화·세계화 함께 요구되는 시대/권력 중앙집중은 생명파괴만 가속/풀뿌리민주주의로 민초삶 회복해야/주민자치바탕 지역 상호존중 새질서를/통일운동 「국가주의」포용하는 「지역연방제」 바람직 현대는 어떤 시대인가?

 현대는 사회구조가 지방으로 분산되면 될수록 분산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거의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확산되는 시대다. 거꾸로 말하면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지방화가 더욱 요구되는 시대다. 지방화, 지방자치, 지역자치, 주민자치는 시대의 요청이다.

 현정부가 민주개혁을 한다 하면서도 지리멸렬한 근본이유는 비전의 결여가 그 하나요, 중앙집중적 권력구조, 관료기구의 비대화, 대의제도의 형해화가 그 둘이다. 민주개혁을 하려면 마땅히 풀뿌리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에로의 방향을 확고히 세워야 하며 집권에서 분권으로, 통치에서 자치로 정치양식을 변혁해야 하고 정치를 정치꾼의 손에서 시민, 주민에게로 해방시켜야 할 것이다. 

 지금의 지방자치는 들러리자치, 26%자치, 그것도 형식뿐이다. 민도가 낮아서 자치를 못한다는 게 일제의 핑계였고 박정권의 핑계였는데 지금도 이 핑계가 완연히 남아 있는데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과연 지역주민의 민도가 그렇게 낮기만 한 것인가?

 최근 양산군주민들의 핵폐기물저장소 반대시위에서 보듯 지역주민의 민주의식은 매우 높고 삶의 질, 환경, 문화, 교육, 지역경제의 자립등과 지역단위의 국제화에 대한 열성과 갈증은 이제 새로운 정치의 틀을 요구할 정도에 이르고 있다. 형식적인 자치로 그쳐야 할 것인가? 아니다.

 주민자치는 만연돼 있는 인간소외, 사회적 불신, 생태계 파괴등 오늘의 삶의 핵심문제를 해결할 대안이다. 근대화과정은 지역의 해체과정이었다. 국민국가의 공권력이 개입한 국민경제의 전국적 통합과정은 지역주민의 삶의 생명과정을 해체·붕괴시키는 과정이었다. 상품화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상품화했으며 삶의 자기 통합과정, 곧 생명과정을 파괴하였다.

 생명과정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다양성, 순환성, 관계성을 본성으로 한다. 이것이 지역적 삶에서는 광의의 노동력, 신용, 토지관계로 나타난다.

 이것은 인간과 자기자신,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적 관계, 인간과 자연의 친교과정으로서 결코 상품화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생명의 질서, 생명과정을 파괴하고 상품화함으로써 소외, 불신, 생태계파괴가 일반화된 것이다. 이것을 되살리는 것, 이것을 부분적으로나마 탈상품화시킴으로써 차가운 경제가 지배하는 시장바깥의 지역공동체에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경제, 따뜻한 사회적 삶을 창조하고 이러한 열린 창조적 공동체의 영향력으로 점차 시장을 수정, 성화시키는 것이 진정하고 근원적인 주민자치의 길, 생명살림의 길이다.

 따라서 민초들은 중앙정부의 선의나 형식적 자치에 만족할 수 없다. 민초들 자신의 삶의 회복운동으로서 장기적 근본적인 주민자치운동이 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질서에 따라 생명가치, 삶의 가치를 경제가치보다 우위에 두는 운동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장기적인 운동과정에서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민초들의 대응도 나와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 주민단체들은 철저하고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해 각 지역과 문제중심으로 다양하고 심도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하여 정당공천후보들의 성실한 공약을 유도해야 하며 그 방향에서 공약에 근거를 두고 지방정부와의 장기적인 정치관계를 창조해야 한다. 한편 단체들 스스로 생협이나 생활공동체, 교육자치와 같은 대안운동, 자치공동체운동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참으로 개혁을 원한다면 내년 선거에서 제기되는 각지역 주민의 정치적 요구와 문제들을 성실히 수렴하여야 하며 정계도 이것을 반영하여 정계개편에 착수, 이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주민활력의 물결을 타고 과감하고 진정한 풀뿌리민주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한해만 빼고는 매년 선거가 있다. 선거는 주민에게는 축제다. 이 축제로서의 연속적 선거과정을 거치면서 장기적 주민자치운동은 크게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자치의 생활적 활력과 그 권력분산의 정치양식, 그리고 이 과정을 관통하는 새롭고 근원적인 생명과 삶의 가치관은 곧 민초들 자신의 삶의 통합운동으로서의 새로운 민초적 민족통일운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새로운 연대의 창조운동이다.

 엔트로피(ENTROPY)가 지배하는 현대세계에서 생명은 필연적으로 분산 해체하면서 거의 동시적으로 근원적이고 새로운 차원에서 유기화 복잡화한다. 「지방화―지구화」 곧 글로칼리제이션(GLOCALIZATION)이 그 흐름이며 정보화시대와 함께 개인성의 우월과 개인사이, 공동체사이의 다양한 그물, 네트워크의 성립이 그 흐름이다.

 민초들의 주민자치운동은 30%자치로부터 70%자치에로의 대권력이동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권력이동과정에서 탄생되는 통일운동은 철저한 지역분권에 기초한 지역간의 자유롭고 상호 존중하는 네트워크로서의 연대운동, 곧 주민자치연방제통일운동 또는 지역연방제 통일운동이다.

 현대의 혼란스럽고 복잡한 다차원적 전환기, 세계화의 추세에 창조적으로 응전하기에는 현존의 국민국가의 틀은 너무 낡고 너무 크고 너무 경직돼있다. 지역연방제 국가가 통일과 함께 나타나야 할 필연성이 여기에 있으며 통일을 단순히 국토와 제도의 통일만이 아닌 실존적 삶의 통합, 이상사회 실현의 길로 이끄는 계기로 삼아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금의 통일론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국민국가주의적 통일론들이다. 김일성씨나 김대중씨 그리고 현정부의 통일론은 한결같이 국민국가, 민족국가, 보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구조하의 민족통일론이다. 그리고 국가경영적 차원의 통일론이지 민초들의 삶의 지향과는 무관하며 다소 차이는 있으나 복합국가론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러한 통일론으로는 안팎의 혼란스럽고 복잡한 다층위적 혼돈과 무질서할 정도의 각종 도전에, 그리고 이러한 정세에 부딪친 생활하는 민초들의 삶의 다양한 요구에 탄력있게 대응할 수 없다.

 그렇다고 국가주의적 통일론을 전면무화시키자는 주장이 아니다. 민초들의 삶의 통합운동으로서의 지역연방제, 또는 주민자치연방제통일론은 기존 통일론과 병행, 양립하면서 통일정세의 고조와 함께 장기적으로 국가주의 통일론을 감아싸고 민초의 삶의 기준과 생명가치의 관점에 따라 그것을 수정, 압박, 변경시켜 종국에는 세계화와 지방화라는 역설적인 현대의 요구에 맞는 이상적인 지역연방제 통일사회를 실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민족통일은 이제 단순히 민족내부문제일 뿐이거나 민족주의적 과제일 뿐인 것이 아니다. 동북아의 급진적 변화에 대응하는 역동적이고 탄력성있는 보편적 삶의 통일론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의 개혁추세는 무엇인가? 그 핵심은 내부의 생활자주권의 요구와 외부의 지구화추세에 대응하여 철저한 지역분권과 연방제국가로의 개혁운동인 것이다. 이 운동은 아마 앞으로 10년 내지 15년은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어떤가? 중국문제의 핵심은 분열가능성이다. 그리고 중국의 오랜 정치적 지혜에 입각한 느슨한 새 형태의 연방제 성립의 가능성이다.

 북한은 점진적으로 개방하든지 급격히 붕괴되든지 할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북한주민의 삶의 분열과 혼란은 막심할 것이며 대규모 유이민이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동북아 변화의 가능성을 모두 내다보면서, 동시에 민초 자신의 생명가치, 생명과정, 삶의 요구라는 거룩하고도 엄중한 정신과 기준에 입각한 민초 자신의 통일론이 나와야 하고 통일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선 남쪽에서부터 그 모델창조운동이 시작돼야 한다.

 이것은 장기적인 주민자치운동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그 계기는 내년의 지방선거다. 시민단체 주민단체들이 이러한 전망밑에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켜야 할 것이며 전국적으로 서로 연대하는 새로운 주민네트워크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

 현대는 민족독립운동의 시대가 아니다. 현대는 자치와 연대의 시대다. 철저한 지역분권과 주민자치, 새로운 삶의 그물로서의 지역연방제 통일사회, 동북아의 새 문명창조를 지향하는 15억 생명공동체, 그리고 범지구생명과 세계인류와의 화엄적 네트워크, 오늘날 우리의생활자 민초들의 삶이 요구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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