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을 몰고왔던 농안법과 관련한 농림수산부와 이 법을 제안한 의원간의 공방은 국민을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김태수차관은 문제의 중매인 도매행위 금지조항이 당초 제출된 법안에는 없었으나 국회소위통과 직전 제안의원이 단독 삽입했다는 주장이고, 신재기의원은 소위에서 여야합의로 통과된것이 무슨 단독 삽입이냐고 반박한 것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우리의 립법과정과 절차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국회는 진상을 분명히 가려내는 한편 차제에 입법절차를 보다 강화하는 제도적 개선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사실 김차관과 신의원의 공방은 농안법파동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인상이 짙어 불쾌하기 짝이 없다. 우선 김차관이 이같은 주장을 농수산물 유통비리에 대한 검찰수사가 착수되기 직전에 한 점도 그렇고 정부가 동조항삽입이 큰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면 개정안을 냈어야 함에도 1년간을 무위로 보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신의원의 경우 국회에 의원입법으로 낸 농안법개정안에 중개인 규제조항이 빠진것을 소위의 축조심의가 끝난 뒤 알고 넣었다는 것은 립법의 허점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동법안의 핵심조항을 빼고 무슨 심의를 했다는 것인가.
따지고 보면 오랫동안 국회는 국리민복에 직결된 법안을 너무나 소홀하게 고치고 또 만들어 오고 있다. 선진 민주국가들은 어느 분야의 법안이든 한 조항·한 자구가 국익과 국민생활에 관련되는 것이어서 그야말로 몇 단계의 다각적인 정밀 심의과정을 밟게 하고 있다. 영국은 법안이 제안되면 법안선정위의 결정으로 전원위에 회부, 1·2독회(일반 및 축조심의)를 거쳐 해당상임위 심사에 회부하고 이어 전원위의 제3독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표결로 결정한다. 미국은 의장으로부터 법안을 배당받은 상임위가 소위를 구성하고, 동소위는 여러 차례 청문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며 법안은 위원회의 손질과 전원위의 1∼3차 독회를 거쳐 역시 본회의에서 가부를 결정한다.
우리 국회의 경우 1950년대에는 그나마 전원위의 축조심의가 필수적이었지만 60년대 이후에는 법안제안, 의장이 상임위에 회부, 상임위서 토의처리 또는 소위구성 심의후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 표결로 단순하게 매듭지어진다. 그나마 소위는 법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는 회의임에도 형식적인 심의나 여야간의 협상·흥정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다.
특히 88년 국회법개정으로 소위도 회의내용을 기록하거나 상세한 회의록을 작성케 되어 있음에도 흔히 집회 일시와 참석자만을 기재해 오고 있는 것은 소위를 막후흥정으로 이용할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국회는 엉성한 입법절차와 의원의 입법권 횡폭와 남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국리민복을 최대한 증진시킬 수 있는 생산적인 입법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당략을 떠나 법안의 정밀심사장치와 소위활동의 완전공개 및 회의내용 기록의 의무화등 제도적 보완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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