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자국법처리” 송환요구 거부/경협 의견접근… 관계복원 진전 구 소련 붕괴이후 한동안 소원했던 북한과 러시아간의 관계복원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양국은 최근 모스크바에서 외무차관회담을 열어 여러 현안에 관해 오랜만에 의견을 교환했다. 지난주말 개최된 이 회담은 정례적인 것이기는 하나 1년3개월여만에 처음으로 열린 고위급 접촉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이번 회담의제중 외견상 가장 관심을 모았던 대목은 시베리아의 북한 벌목공 지위문제. 그러나 북한과 러시아가 내심 기대했던 목적은 벌목노동자문제보다도 양국의 전반적인 관계증진에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다시 말해 벌목노동자문제라는 뜨거운 감자를 주요 현안으로 다루는 한편으로 경제 외교적 협력문제에 양국의 입장조율과 관계해빙등 다목적 이해를 노렸고 그같은 효과를 이번 회담을 통해 상당히 거뒀다는 것이다.
양국은 이번 외무차관회담에서 벌목노동자 및 임업협정 개정문제에 심각한 견해차를 보여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추후 이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실무협상을 계속하자고 의견을 모은것이 고작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탈출 벌목노동자들이 양국의 협정과 자국의 국내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자국으로 송환되어야 한다는 종래 입장을 되풀이했고 러시아는 자국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들은 자국법에 따라 처리되어야 하며 자국의 거주허가를 받은 외국인은 어디로든지 여행할 수 있다며 북한측의 요구와 주장을 강력히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외무차관회담은 지난 수년동안의 여느 고위급 외교접촉에 비교해 아주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끝났다. 이는 양국이 벌목노동자 이외의 현안들에 관해 상당히 흡족한 수확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양국은 이번에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경제협력을 강화키로 의견을 모았다.극동시베리아지역에서 다양한 경협방안을 추진하고 유명무실했던 양국간의 각종 경제위원회를 다시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적극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함께 한반도 비핵화문제와 관련, 러시아가 제의한 8자회담 개최문제에 관해서도 양국이 상당한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북한측은 『8자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앞으로 회담의 형식이나 내용등에 관해 러시아측이 구체적인 계획을 북한에 통보해 오면 이를 연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러시아측에 전달했다.
결국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과 러시아 양국은 향후 관계복원을 위한 최소한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양측이 이처럼 화해 제스처를 취한 것은 두나라가 처한 국제적인 환경이나 위상을 감안할 때 상대방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절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고립화되고 있는 자국의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러시아를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필요성이 절박하게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경협논리를 앞세우며 한반도등 국제정세에서 소외감을 느껴온 러시아의 자존심을 이번에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러시아 역시 국제외교무대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북한을 적절한 지렛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계산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친한 일변도로 비춰졌던 한반도정책에서 탈피, 남북한 등거리외교로 방향을 선회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확대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의 러시아방문을 앞두고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함으로써 예상되는 이해득실을 고려하는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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