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5·16 군사쿠데타가 33주년을 지난 날이었고, 내일은 5·18 광주항쟁 14주년이 되는 날이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조계종의 종단개혁후 처음 맞는 부처님 오신날이 군부의 정권찬탈에 항거해 궐기한 5·18과 겹쳤다. 5·16이후 군사통치가 계속되는동안 불교계에서는 「호국불교」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이 때문에 전두환정권 초기 유례를 찾기 힘든 법난을 겪기도 했다. 유신독재가 극성이던 75년에 펴낸 수상집 「서 있는 사람들」(샘터 간)에서 법정스님은 호국불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렇게 기술했다.
『이따금 호국불교에 대한 논의가 교단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이 있는데, 그 때마다 제각기 편리한대로만 갖다 붙이는 바람에 그 개념 자체가 애매모호하게 된다. 언필칭 한국불교의 전통을 호국불교에 귀착시키려는 사람일수록 호국이라는 개념을 지극히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다.…불보살의 절대적인 자비로 보면, 국가에 대한 관념 자체가 하나의 편협한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구국의 길에 앞장섰던 것은, 소수 특권지배계층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도탄에 빠져 억울하게 희생되고 있는 많은 이웃을 구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외적의 침략에 맞서 호국의 대열에 뛰어들었던 구도자들의 헌신은 모두 백성을 위한 것이었으며, 체제의 옹호나 전제군주에 아첨하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것이 말하자면 그의 호국불교론이다. 군사통치시대 30여년동안 늘 반독재 편에 서 있었던 것처럼 그는 이번 불교계 개혁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의 주장처럼 조계종단의 개혁이 묵은 때를 씻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데에 그 뜻이 있다면, 내일 18일 하루는 교계 외부와의 다툼을 쉬고 법난과 광주항쟁 희생자의 영혼을 함께 위로하는 날로 기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에 경찰을 투입한 일에 대해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고 산문을 폐쇄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개혁된 승단의 목소리라고 보기 어렵다. 개혁을 통해 본연의 자리를 되찾은 승려들의 자비와 화평의 모습은 더욱 아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불교계가 개혁된 스스로의 힘으로 이 모든 갈등의 고리를 시원하게 끊어버리는 모습이 보고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계종단 개혁운동 과정에서, 그것이 지금 문민정부가 추진중인 개혁과 방향이 같은 것인지 어떤지에 대한 판단조차 없었던것 같이 보인 정부의 졸렬한 대응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종무당국자의 맹성이 있어야할 것이다.<편집부국장>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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