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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사업의 전위기구로 변질/「인도주의 공방」계기로 본 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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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사업의 전위기구로 변질/「인도주의 공방」계기로 본 북적

입력
1994.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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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위원장 「낭군테러」때 버마대사/고위급회담전엔 유일한 남북창구 남북적십자간에 「인도주의 공방」이 불붙고 있다. 남북한 당국간 대화가 중단된 상태에서 다시 적십자창구를 통한 전화통지문과 성명이 오가고 있는 것이다.

 강영훈대한적십자사총재는 지난6일 세계적십자의 날 기념사를 통해 이산가족상호방문등을 위한 제11차 남북적십자회담의 개최를 제의했다. 북한측 이성호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지난해 10월14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3차례 대남통지문을 보내 함세환, 김인서씨등 미전향장기수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구한말인 1905년 칙령으로 설립됐던 대한적십자사는 일제 때 폐사됐다가 해방후 남북한에서 각각 별도로 재조직됐다.

 북한측에서는 46년5월25일 평양의대교수 이성숙씨와 이상빈씨등 의학계 인물이 중심이 돼 주로 국내구제활동을 목적으로 조선적십자회가 설립됐다. 그러나 북한정권수립과 함께 북적은 대남사업과 외교활동을 주목적으로 하는 당의 중요한 전위기구로 성격이 변질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측에서는 국제적십자연맹 창립기념일(5월5일) 다음날인 6일 기념식이 개최된 반면 북한에서는 하루전인 4일 평양에서 경축모임과 사진전등 각종 행사가 개최됐다. 평양방송에 의하면 북적의 경축모임에서는 90년대 적십자 발전전략 및 사업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내에서 벌인 각종 사회봉사활동을 공개했다. 

 그러나 북적의 활동은 역대 위원장이 주로 외교관출신으로 임명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외 및 대남 선전활동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현재 위원장대리를 맡고 있는 이성호는 버마 랑군테러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버마주재 북한대사를 지냈던 인물. 83년 11월 버마가 북한과 단교, 본국으로 송환된 그는 대외문화연락위 부위원장등을 지내다 조선적십자회에 들어와 부위원장을 맡으며 87년에는 적십자대표단을 이끌고 중국, 쿠바를 순방하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였다. 

 전임 위원장인 손성필 현소련대사는 71년부터 90년까지 20년 가까이 조선적십자 위원장을 지내며 대남사업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 그는 장로교 목사출신이면서 북한의 부주석을 지내다 80년 사망한 강량욱의 사위로 인민경제대학 총장을 지냈던 학자출신이다. 그는 적십자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내며 제3세계 외교에 주역중 한사람으로 활동도 했었다.

 북적은 중앙위원회에 위원장과 12명의 부위원장, 8명의 상무위원을 두고 있는데 상무위원중에는 조평통 서기국장 백남준, 남북특사교환을 위한 실무대표단장 박영수등 대남사업관련자가 다수 포함돼 있다.

 중앙위에는 문화선전부, 국제부, 동포사업부, 조직계획부, 출판보도부등의 부서가 있고 산하에 평양시위원회(위원장 왕경학)를 비롯한 각 시도위원회를 두고 있다.

 남북고위급회담이 개최될 때까지 남북대화는 사실상 전적으로 적십자창구를 통해 이루어 졌다. 71년 적십자예비회담은 남북밀사교환으로 이어졌고 85년 제8차 적십자본회담은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사업을 실현시키기도 했다. 북적은 84년9월 우리측에 쌀5만석, 천 50만미터, 시멘트10만톤, 의약품등의 수재물자를 인도하기도 했다. 당시 북한측은 선전적 차원에서 수재물자 공여를 제의했다가 우리측이 기습적으로 이를 수용하는 바람에 물자조달을 위해 큰 곤경을 겪었다는 사실이 북한측 당국자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유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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