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리적 국경에는 책임이 없다』 스탈린은 1938년 핀란드에 정치적 휴전을 제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영토에 대한 관심은 지금까지도 국제분쟁의 주요한 요인이다. 영토의 할양요구, 자원을 둘러싼 이해관계, 국경재확정요구등이 비이념적인 분쟁의 요인이다. 스탈린은 국가간의 영토분쟁은 도덕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약육강식의 자연스런 현상임을 주장한 것 같다. 역사적으로 근세유럽에서 제국의 영토확장 욕심은 분쟁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 합스부르크 부르봉왕조의 영토욕심은 말할 것도 없고 나폴레옹의 침략전쟁도 그것이다. 프러시아가 다른 지역의 독일인을 통합시키겠다며 오스트리아와 경쟁을 벌였고 또한 덴마크까지 침략했다. 19세기까지 미국의 먼로주의도 『아메리카대륙은 우리 것』이라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며 스페인과의 전쟁도 이때문에 일어났다.
그러나 2차대전후의 국제적인 패권다툼과 냉전체제하에서 이념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쟁은 영토적인 야심으로 보기는 어렵다. 특히 89년이후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이념의 영향력은 크게 줄었다. 현재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영토확장을 위한 분쟁은 그들이 아직도 과거의 이념에 얽매여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의 국력은 군사력이 아니라 산업과 재정, 문화적 영향력에 달려있다. 이제 군사적 팽창은 한계가 있고 서로 견제의 균형상태를 이루고 있다. 또한 군사적 승리도 군사동맹의 틀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국제정치상의 「힘의 균형」이란 무엇이며 경제적 맥락하에서 군사적 동맹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미국과 일본, 유럽은 군사적으로는 동맹관계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라이벌이다. 그들은 경쟁적인 상품을 만들어 동일 시장에서 판매경쟁을 벌이고 있다. 또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묶어진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는 경제적으로는 유럽과 일본에 대해 적대적 관계이다. 힘의 균형이라는 국제정치상의 용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러시아 중국 일본간의 관계에 적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산업국가간이나 무역블록내의 국가들은 경쟁관계이면서도 서로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나 유럽으로부터 이익을 취해 경제를 회복하고 있다. 이것은 서로 시장을 개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토적 경쟁관계는 어느 일방이 이익을 얻을 경우 다른 쪽은 잃게되는 제로섬 게임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경쟁관계는 한쪽이 흥하면 함께 흥하고 망해도 함께 망하는 공동체내의 게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제관계에서는 힘의 균형이라는 논리를 적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관계에서 전통적인 군사적 대결이나 안보위협과 같은 이슈들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직도 군사적인 위협과 국지적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다.
미국과 일본, 유럽은 경제력으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지금은 군사력이 1989년 이전과 같은 중요성을 잃어버렸다. 미국은 소련과 경쟁했던 냉전시대보다는 군사력이 약해졌지만 지구상의 「유일한 초강대국」임에는 틀림없다. 군사력만으로 더이상 현대국가가 필요로 하는 번영과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세계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력과 문화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경제적 성공과 번영은 사회정의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은 문제가 많다. 초강대국의 지위에 맞게 사회의 불공정·폭력·무질서·기강해이등의 문제를 잘 해결하여야 한다. 유럽도 실업과 경제침체로 국제적인 영향력이 퇴조하고 있다. 러시아도 아직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경제침체와 정치혼란으로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이러한 새 현상으로 인해 국제정치상의 힘과 영향력의 행사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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