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초, 프랑스에서 조선의궤 책을 샀다는 대영박물관보관의 1891년 영수증이 한국일보의 보도로 화제가 됐다. 놀라운 보존성이다. 그러나 그 속성은 영국인만의 것이 아니다. 거래의 증빙은 영수증으로 남긴다. 더구나 그것이 박물관의 일임에랴. 92년 한국인들은 5명중 1명이 이사했다는 통계가 있었다. 살다보면 숟가락 하나라도 늘어나니 이사할 때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뭔가를 버려야 했을 터이다. 혹시 주부들은 6백30ℓ냉장고를 새로 들여놓기 위해서 외아들의 국민학교 개근상장이나 일기장을 버렸을지 모른다. 버리는 것은 가정만이 아닐 것이다. 기업들은 전자화의 미명하에 어제의 문서를 파기했는지 모른다.
언젠가 어느 방송사가 우리 영화인 「빨간 마후라」를 찾다 찾다가 못 찾아 결국은 대만에서 발견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우리에겐 데이터 베이스 개념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삶에 매달려, 혹은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버리는 일에 익숙하여 어제를 부정하고 있는지 모른다. 왜 그런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나라의 오랜 절대통치 풍토와 무관하지 않을게다. 사람들은 문서 때문에 걸핏하면 멸문지화의 위기에 봉착했다. 남긴 것은 불리한 증거가 되기 십상이었다. 때문에 글을 남기든 뭘 남기든 남기는 것이 금기였다.
그런 풍토에서 희생된 것이 우리 문화, 우리 정보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짜 정보는 수평·수직이동이 어려운 폐쇄회로 속에 있다는 것도 그 까닭일지 모른다. 정보화사회를 위해서도 민주주의의 만개가 필요하다. 문화 역시 자유 속에서 발전돼야 인류공동의 유산으로 노벨상도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문화에도 경쟁력의 강화가 필요하다면 먼저 보존의 풍토부터 이룩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보존은 재활용 차원이 아니다. 정신과 문화의 보존이다. 얼마전 어느 대학 학생회가 매월 학생회관앞에 생활용품의 물물교환을 위한 「벼룩시장」을 개설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그런 벼룩시장이 모든 종류의 벼룩시장으로, 또 일반에게도 널리 확산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하늘을 찌르는 콘크리트의 잿빛 도시를 만들면서 은빛으로 빛나던 초가를 싹 쓸었다. 지금은 무엇을 잃고 있는가.
휴일, 한강변 고수부지, 대덕의 어느 국민학교 교정, 혹은 부산이나 광주의 어느 구청 마당에서 우표와 동전, 헌 책, 옛날의 전시회나 극장 포스터, 기념 공중전화카드등 온갖 잡동사니와 문화상품이 사고 팔리고 교환되는 벼룩시장을 나는 머리에 떠올린다. 이런 행사들이 행사를 넘어서 우리 사회에 생활화되는건 언제쯤일까. <여론독자부장>여론독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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