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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역부족/이태희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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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역부족/이태희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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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공검사 미필건물과 무허가 건물의 등기가 가능하도록 등기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대법원의 방침이 보도되자 독자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건물을 다 지어놓고도 건축법상의 사소한 「하자」 때문에 준공검사를 받지 못해 여러가지 고통을 겪던 차에 너무나 반갑다』는 반응들이었다. 『행정목적만을 위해 현실을 무시하는 규제장치를 대법원이 나서서 풀어준다니 세상의 변화를 실감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행정규제의 고삐를 쥐고 있는 건설부등 행정부처는 물론 규제완화 방침의 당사자인 대법원까지 일반의 부푼 기대와는 어긋나는 방향으로 사안을 몰아가고 있어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건설부는 대법원의 방침이 보도되자 『법원의 「법의 논리」가 일리는 있지만 불법건축물이 양산될 것이 뻔한데 쉽게 실현될 수 있겠느냐』고 애써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대법원에서 공식통보가 없어 등기제도 개선문제를 검토해 보지도 않았다』며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언급조차 피하려는 관계자들마저 있었다.

 대법원 고위관계자들은 당초 실무진의 「입」을 통해 등기제도 개선방침이 보도되자 『관계부처와 협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법원 방침이 전해져 일을 그르칠 우려가 있다』는 질책과 함께 이례적인 「함구령」까지 내렸다. 이어 10일 『불법건축물이 등기부에 공시되는 것을 막으려는 건축행정목적에 크게 배치되지 않도록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보존등기가 가능하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당초 방침에서 크게 후퇴한 자세를 취했다.

 등기제도의 본래 목적은 「재산권 공시」지 과세나 불법 건축물규제가 아니다. 대법원의 등기제도 개선방침은 법의 원칙이 행정목적 때문에 왜곡돼온 현상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는 동시에 행정목적을 내세워 국민들의 불이익은 아랑곳않는 행정부의 타성적 관행을 묵인·방관해온 사법부의 구태를 과감히 벗으려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이 불과 며칠만에 이같은 의지와 노력을 포기한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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