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개혁실패” 우파정권 외면/시장경제 추진 등 변신 호감도 9일 실시된 헝가리 총선 1차투표에서 공산당의 후신인 사회당이 집권 중도우파연정을 누르고 승리함으로써 동구권의 「사회주의세력 재등장」은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난 89년말부터 공산주의 체제가 하나씩 무너지면서 동구 각국에는 민주우파가 집권세력으로 일제히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시장경제개혁과 개방정책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국민들은 불만을 갖게 됐고 별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다시 사회주의 세력에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92년 말을 전후해 슬로베니아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폴란드에 좌파정권이 다시 들어섰다. 여기에 루마니아와 알바니아까지 합치면 동구는 표면상 사회주의 일색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예외는 체코,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세 나라 정도.
그러나 동구권 좌파의 재집권이 「사회주의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와는 관계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좌파는 오히려 정책면에서는 시장경제 추진등 우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헝가리 사회당의 승리과정은 동구권 사회주의세력 재등장의 의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런던대학의 조지 쇼플린 교수(동유럽정치학)는 『헝가리와 폴란드의 재구성된 공산계와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재구성되지 않은 공산당은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동구권에 재등장한 사회주의 세력은 서구 스타일의 좌파정당에 가깝다는 것이다. 헝가리 사회당 임레 세케레스부당수는 이를 입증하듯 총선승리가 확정된 후 『역사에 후퇴는 없으며 결코 공산주의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헝가리 사회당의 재집권은 국민들의 중도우파연정에 대한 실망의 표현이지 사회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선택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공산체제 붕괴로 90년 집권한 헝가리민주포럼(MDF) 중심의 중도우파연정은 지난 4년간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가 유발됐다. 경제악화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당연한 것이었다. 90년 말에 2%에 불과하던 실업률이 지금은 12.2%나 된다. 물가도 4년간 2.5배나 올랐고 국내총생산은 20%나 떨어졌다. 특히 가뭄으로 92년에는 농업생산이 평년의 3분의 1로 떨어졌고 작년에는 다시 반으로 떨어졌다. 91년에는 루블시스템의 붕괴로 동구권 무역에 크게 의존해온 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 연금생활자·공무원·실업자등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계층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사회당이 생활수준의 하락을 막을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다. 사회당은 지난 1990년까지 40년간 집권한 헝가리 공산당의 후신이지만 공산당 시절에도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의 공산당과는 달리 경제개혁을 꾸준히 추진한 바 있다. 68년부터 스탈린주의적 중앙집권화에서 벗어나 신경제계획을 추진, 기업의 자율과 경쟁을 어느 정도 허용했다. 젊은「개혁파 공산주의자들」은 87년에 공산주의 국가로는 처음으로 이중 은행체제를 도입,관료들이 아니라 시장이 대출을 할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 88년에는 기업과 외국인 투자에 대한 자유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89년에는 초보적 형태의 주식거래가 활발했고 90년에는 40만개의 민간기업체가 생겨났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지금 많은 헝가리인들은 공산당을 5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잔인하게 탄압한 세력이 아니라 구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그나마 가장 활발한 경제개혁을 이룩한 세력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최근 헝가리에서 유행하는 농담대로 『우파는 공산당이 40년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만 일을 4년만에 성공했다. 사회주의의 인기도를 높인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사회당에 기대하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경제회복이다.【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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