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훈대한적십자사총재는 9일 북한측에 대해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의 재개를 촉구했다. 강총재는 이날 적십자사 강당에서 열린 세계적십자의 날 기념식사를 통해 『동진호 선원을 비롯한 납북자 4백여명의 귀환과 92년 합의한 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 교환사업은 하루빨리 실현돼야 한다』면서 『이같은 문제들의 이행을 위해 남북적십자회담의 재개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강총재는 또 『북한이 미전향장기수들의 송환을 요구하는 것은 국제인도법의 아전인수격 해석』이라며 『북한이 인도주의를 이야기하려면 약속한 대로 동진호선원들의 송환과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관계자는 이와 관련, 『강총재의 기념사는 적십자회담 재개를 위한 사실상의 대북제의』라면서 『북한의 대응에 따라 제11차 남북적십자회담개최를 정식제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남북의 적십자사는 92년8월 남북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 및 예술단교환문제를 위한 실무대표접촉이 결렬된 이후 대화를 중단한 상태다.
◎해설/특사교환 결렬로 대북협상 사안별 분리/「미전향장기수·동진호납북자」 현안부각
강영훈대한적십자사총재가 9일 세계적십자의 날 기념사를 통해 남북적십자회담의 재개를 공식적으로 촉구한것은 특사교환 포기후 달라진 대북정책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강총재의 이날 기념사는 사실상 남북적십자회담개최를 위한 대북제의로 해석되고 있다. 이같은 제의는 정부가 향후 특사회담을 통해 포괄적으로 추진하려던 인도주의 문제등의 해결을 별개의 문제로 추진키로 방향을 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부는 향후 북한측 대응을 보아가며 적십자회담의 재개를 정식 제의할 방침인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특사교환방식의 해법이 철회된 이후 남북한간 줄다리기는 적십자회담으로 장소를 옮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며 남북한간에는 미전향장기수, 동진호등 납북자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핵문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사찰문제로 단순화하고 남북한 고유의 현안은무대를 따로 옮기는 「현안별」 해결방식으로 정리되는것이다.
또 주목되는것은 가능한한 북한측 주장을 포용하는 자세에서 문제를 풀어가려던 이른바 「맏형」전략에서 공세에 대해 같은 수준으로 반박하는 맞대응(TIT FOR TAT)전략으로의 전환이다. 지난해 3월 이루어졌던 이인모씨의 송환은 맏형론의 전형적인 사례다. 정부는 이씨의 북송이 그가 전쟁포로라는 점을 인정한것이 아니고 하나의「특례조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6공화국 당시인 92년8월 북측이 이인모씨의 사전송환을 요구했을 때 ▲동진호 선원등 납북인사의 송환 ▲이산가족방문단의 정례화 ▲판문점 이산가족면회소설치등 3가지를 대응조건으로 내세웠었다. 따라서 이번에 강영훈총재의 대북메시지에 나타난 우리측 자세는 특례조치인 이씨 북송이 아무런 가시적인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원래의 원칙으로 돌아온것으로 볼 수 있다.
적십자사의 이번 제의는 또 북한 탈출 벌목노동자문제가 현안화된것과 전후해 북한측이 가해온 북한식의 「인도주의공세」를 정면으로 반박해 이를 잠재우기 위한것이라는 측면도 있다. 북한은 지난달 11일 이른바 8·15민족대회추진을 위한 편지공세를 펴고 고문익환목사 백일추모행사 참가를 요청하는가 하면, 조선적십자사명의로 함세환·김인서씨등 미전향장기수와 91년 사망한 북한출신 장기수 김병준씨의 딸 김지현씨의 송환등을 누차 요구하며 우리측 을 「비인도적」이라고 비난해 왔다.
함씨등은 민병활동을 했으므로 49년 제네바조약에 의한 전쟁포로로 이에 상응한 대우를 해야한다는 게 북한측 주장이다. 또 87년 납북된 동진호 선원들은 간첩활동을 했음을 자백한뒤 북한거주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함씨등이 자의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뒤 양민학살등을 범한 국내법범법자라고 규정하는 한편, 이같은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개최하자고 반박하고 있다.
70년대의 남북밀사회담, 90년 이후 고위급회담· 당국간회담이 모두 남북적십자회담으로 물꼬를 튼뒤 성사됐다는 점에서 이번 제의에 대한 북한측 대응이 주목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당초 북한측의 미전향장기수 송환요구가 선전공세 의도에서 나온것이므로 남북적십자회담의 성사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까지는 지배적이다.【유승우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