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탁 20여명에 용돈도 보조/오늘 노인회서 효행자상 수상/“당연한 일 했을뿐인데…” 낯 붉혀 어버이 날을 하루앞둔 7일 낮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 독립공원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노인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 40대 「아들」을 반갑게 맞았다.
김종은씨(47·의류제조업·서울 중구 순화동 1의49).
김씨에게는 어버이날이 따로없다. 팔순노모를 모시고 살면서도 거리의 노인들을 아버지 어머니삼아 10년째 「점심공양」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는 어버이날인 8일 김씨에게 효행자상을 수여한다. 수상소식을 전해들은 김씨는 『세상의 모든 어버이가 저에게는 아버지이고 어머니입니다. 자식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인데…』라며 부끄러워했다. 온갖 역경을 뚫고 지금은 어엿한 의류제조업체 사장으로 자수성가한 김씨는 배고픔과 허기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김씨는 철들면서부터 『나보다 더 불우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자』고 결심했다.
사업기반을 어느정도 잡게된 84년부터는 독립공원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 결식노인들에게 점심을 대접해왔다. 김씨는 매일 1백∼2백명의 노인들에게 10만∼20만원어치의 김밥 우유 빵을 대접하느라 아직까지 내집 한칸 마련하지못한 「선량한 기인」이다. 제 부모를 모시려 하지않을뿐아니라 현대판 「고려장」이 사회문제가 되는 세태에서 김씨의 이같은 선행은 돋보인다. 주위에서는 이상한 눈초리로 보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하지만 김씨의 과거를 알고나면 무조건 베풀려는 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4세때 충남 부여 금성고아원에 버려졌다. 11세때 고아원을 뛰쳐나와 무작정 상경한 김씨는 남대문시장의 옷공장에 들어가 밑바닥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손끝이 매워 눈치밥을 먹으면서도 틈틈이 재단일을 익혀 17세때 1급재단사가 됐다. 살만해진 김씨는 혈육을 찾다 62년 꿈에 그리던 어머니(81)를 만났다. 이때부터 김씨는 외롭고 소외된 노인돕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37세의 나이에 「영패션」이라는 자기 공장을 차려 독립한 김씨는 버는 돈을 대부분 「거리의 부모」를 위해 써왔다.
무료점심뿐 아니라 돌보는 이 없는 할머니 20여명에게 매달 5만∼10만원씩 보조해주느라 월수입 5백만원이 모자랄 정도이다.【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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