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덕분에 하루를 쉬면서 여가와 휴식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해방성·자유선택성 등이 여가의 본질이라면 자녀가 어린 부모들에게 어린이날은 여가라기 보다 「상전」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사역의 날이었다. 날씨마저 심술。었던 이번 어린이날에는 부모세대와 입맛도 다른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피곤하고 난감한 표정이 곳곳에서 눈에 뛰었다. 그러면 이미 어린이날의 속박에서 벗어난 세대는 이 여가를 어떻게 보냈을까. 재충전기회로 잘 활용한 사람들도 많겠지만 여가를 주체할 수 없거나 집을 나서면 인파에 치여 고생하고 기분만 잡치리라는 생각에서 그저 빈둥거린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런 때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 가족의 상황에 알맞은 여가모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어디에도 여가상담소나 여가상담원은 없으며 개인의 구체적 여가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빈약하다.
정부는 80년대부터 의 식 주에 행과 낙까지를 합쳐 국민의 5대 생활요소라고 강조하면서 국민관광개념을 행정에 도입, 주로 여가자원개발에 힘써왔다. 하지만 여가가 이제는 하나의 활동양식이 아니라 생활양식이 돼버린 점, 일과 직업에서 자기를 확인하기 보다 여가와 휴식에서 자기를 확인하는 세대가 늘고 있는 점을 행정은 아직도 경시하고 있다. 그런 세대는 보고 즐기는 관광 위주의 여가보다 참여하고 체험하는 활동적 여가를 선호한다. 또 여가의 개념조차 없이 일만 하며 살아온 중년 이상의 세대가 엄청난 여가집단으로 대두되고 있다. 93년말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1.4세, 65세 이상은 5.4%로 2000년에는 평균수명 74.3세, 65세 이상이 6.8%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노령화사회의 여가문제처리를 포함한 국가적 행정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할 상황이다.
내무부 건설부 보사부 교통부 문화체육부 등의 여가행정을 결합해 독립적인 여가담당부처를 신설할 수도 있고 각 부처의 여가행정을 종합조정하는 기구를 설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지금과 같은 국토개발행정·관광행정은 여가행정의 관점에서 재편·조정돼야 하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수익 위주로 수립되는 정책도 국민편의 위주로 전환돼야 한다.
우리의 여가활용이나 여가행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여가는 일을 하지 않는 것,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일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은 여가공포증을 갖게 되거나 불건전한 행락에 흐르기 쉽다. 따라서 이의 해소와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여가에 대한 국민교육과 훈련은 관광지나 오락시설의 개발보다 더 중요하다. 그 교육과 훈련은 당연히 정책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먼저 실시돼야 한다.<기획취재부장>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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