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불안-농민원성 진화급해/집단행동 굴복인상 “나쁜선례” 정부는 개정 농안법시행을 6개월 유보하는 것으로 농수산물도매시장 중매인들의 경매참여거부로 비롯된 사태의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는 이 결정으로 우선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농수산물의 유통개선이 멀어지게 된 것은 물론 앞으로 누구든 집단행동에 들어가면 정부로부터 양보를 받아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정부가 이같은 부담을 안고도 중매인들에게 하루만에 백기를 든 것은 중매인들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물가불안과 판로봉쇄에 따른 농민들의 불만분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중매인들의 경매거부가 계속된 지난 3일부터 4일까지 하루사이에만도 산지 반입물량이 줄어들어 소비지의 농산물가격이 크게 뛰어올랐다. 정부는 이 사태가 계속되면 4월들어 겨우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한 물가가 크게 불안해질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산지사정도 마찬가지다. 중매인들의 경매거부로 제때 작물을 처리할 수 없게 된 농민들 사이에서 『도대체 정부는 뭘 하고 있느냐』는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때와 같은 집단불만으로 확산될까 우려, 우선 불끄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이날 상오까지만 해도 세무조사, 주모자에 대한 법적조치등 강경대응방안과 공판장과 임시도매시장 확충을 통해 반입농수산물을 분산처리함으로써 이번 사태를 수습하려 했었다.
그러나 이같은 단기대책들만으로는 농수산물 유통마비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농안법 시행 6개월 유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공판장과 임시도매시장의 처리물량도 도매시장 반입물량의 30%에 불과해 수급을 맞추지 못한다는 분석이 있었다. 불과 하루만의 중개행위 거부로도 가격폭등, 물량적체등의 부작용이 야기됐는데 이 사태가 며칠이라도 계속되면 부작용은 증폭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이는 농어민과 소비자들에게 정부에 대한 불신만 심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결정은 국민들로부터 별로 지지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일부에서는 중매인들이 국민여론과 실질수익 감소등의 불이익때문에 경매장복귀는 시간문제였다는 점을 들어 정부가 당장의 혼란만을 겁내 불끄기에만 급급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매인들의 상당수는 중간 수집상에게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20억∼30억원을 투자해놓고 농수산물의 반입을 기다리고 있는데 물량 반입이 늦으면 늦을수록 손해도 커지므로 어쩔 수 없이 경매장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무엇보다 크게 우려하는 것은 정부가 앞으로 이와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이번 정부의 결정을 두고 『문민정부 출범이후 정부가 처음 집단민원에 굴복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박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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