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들의 이직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직의 원인이 사뭇 충격적이다. 자녀들의 과외비 또는 해외유학비용을 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판검사 월급으로는 도저히 과외비를 감당할 수 없어 변호사 개업을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와 올들어 「과외고」로 그만둔 부장판·검사급 중견 법조인이 4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판검사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엘리트집단이다. 판검사는 직업으로서도 가장 안정돼 있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른 계층이다.
도대체 그런 그들을 재조에서 내모는 과외의 위력은 얼마나 엄청난가. 도대체 그들이 대야 할 과외비가 얼마나 되기에 명예와 자부도 마다하는가. 도대체 현직을 포기하면 물질적 보상도 가능하고, 어느 정도 명예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가. 도대체 법을 집행하는 판검사들마저 과외앞에 무력하다면 망국병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과외병의 치유는 아예 불가능한가. 과외비조달을 위한 판검사들의 이직속출 신문보도를 읽은뒤 머리속에 오가는 상념들이다.
과외문제의 심각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판검사들마저 과외비를 감당할 수 없어 판검사의 직을 그만둬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면 이야말로 보통일이 아니다. 그들이야 말로 이 사회에서 누구보다 사리판단을 냉철히 해야 할 계층이라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판검사들의 이직문제로 과외문제의 심각성을 빗대는 것은 올바른 접근방법이 아닐 지도 모른다. 이 문제야말로 누가 누구를 나무랄 성질이 아닌,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보도들에 의하면 고3생 그룹과외의 경우 과목당 월 50만원, 1대1과외의 경우 과목당 최소 1백만원이라고 한다. 기초 3과목만 과외를 시킨다해도 월 최소 1백50만원에서 3백만원이 과외비로 지출돼야 하는 것이다. 자녀가 많으면 비용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고위공무원 또는 회사임원의 부인이 자녀과외비를 벌기 위해 파출부를 한다는 얘기가 신문에 나는 세상이 된 것도 그럴법하다. 그래서 서울의 일부지역 학부모들 사이에선 「자녀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2천만원짜리 계를 들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그래야만 고3때 아쉽게나마 과외비를 댈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월급이 1백50만원 안팎일 판검사가 봉급으로 자녀의 과외를 시켜야 할 형편이라면 그만두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누구보다 세상을 원칙대로 보고, 살아가야 할 판검사들로 하여금 비원칙에 대한 시정의지보다 백기투항을 하게 만든 과외의 폐해는 이제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른 느낌이다.<주간한국부장>주간한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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