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구조 개선 긍정효과 불구/유예기간 보완소홀 파동 자초 개정된 「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이 국민 생활과 직결된 농수산물의 유통과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개정취지와는 달리 거래중단·가격폭등등 농수산물 유통마비사태를 가져오게 된것은 「현실」을 무시하고 충분한 준비없이 「개혁」만을 서둘렀기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예정된 부작용이라는 점에서 이를 미리 막지 못한 정부와 민자당의 책임도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국민생활을 볼모로 경매에 참여하지않은 중매인들의 행태도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아야한다는 여론이 높다.
개정 농안법은 지난 92년 7월 민자당 신재기의원등이 의원입법으로 개정안을 제출, 지난해 5월 국회본회의를 통과했다. 신의원등은 개정안에서 「법정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중매인들이 도·소매까지 함에 따라 농수산물 유통질서가 문란해지고 있으므로 이들의 도·소매행위를 허용하고 있는 농안법을 개정, 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중매인들은 소매상이나 소비자로부터 주문을 받아 물건을 경매만 하는것이 원래의 기능인데 밭떼기나 직접판매등 도·소매행위까지 하므로 매점매석이나 가격조작등 유통질서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는것이다.
개정 농안법은 농산물유통구조개선사업이 우루과이라운드에 대비한 핵심적인 농업대책이라는 지지를 받으며 국회를 통과,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던 것은 중매인들이 사실상 도매시장 거래물량의 90%이상을 도·소매하는 현실에서 이를 일시에 중단시키면 농산물 유통질서에 혼란이 불가피할것이라는 여론에 따른것이다.
개정 농안법 시행령 마련을 위해 지난해 후반 연이어 열렸던 각종 공청회에서 중매인들은 물론 학계인사들과 유통전문가·경실련등 시민단체에서도 이같은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근본적인 보완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개정 농안법은 혼란만 가져올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농산물유통구조 개선사업의 주무부서인 농림수산부에서도 중매인들이 도·소매를 중단하면 산지에서는 반입이 안되며 소비지에서는 판매가 안돼 거래량의 80%까지 시장에 적체되고 결국 산지에서는 가격폭락, 소비지에서는 가격폭등현상이 나타날것이라며 시행 연기를 주장했었다.
이같은 반대는 시행일 불과 며칠 전 까지 계속됐다. 우여곡절끝에 만들어진 개정 농안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확정하기 위해 지난달 하순 정부와 민자당이 당정회의를 열었으나 부작용에 대한 문제가 다시 제기돼 격론을 벌이다 당초 예정대로 시행을 주장하는 당쪽의 고집이 받아들여져 지난 1일부터 시행에 돌입하게 된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매인들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법대로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실행에 들어갔다. 중매인들의 이같은 입장표명은 농수산물 도·소매를 좌지우지 하는 자신들이 도·소매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가를 지켜보라는 경고였다. 실제 이들이 투쟁에 나서자 도매시장에서는 거래물량이 크게 줄어들었으며 가격도 크게 올랐다. 중매인들은 이같은 사태가 계속될 경우 정부와 민자당이 개정안의 시행을 다시 유보할것을 기대했으며 이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번 사태가 현실을 무시한 법시행 때문에 야기됐다는 지적이 나오게 된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에도 문제가 있다. 개정 농안법과 시행령등은 중매인들의 판매행위를 금지하는데 따른 문제점에 대처하기 위해 도·소매 전담법인 조직등을 비롯한 몇가지 대책을 마련해두긴 했지만 현실적인 대안은 되지 못한다는것이 이번 파동에서 드러났다. 결국 정부는 법 개정후 시행때까지 1년간 부작용을 우려만 했지 실효성있는 대책은 만들어내지 못한것이다.
농수산물 유통구조개선사업은 우루과이라운드 타결후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한 핵심적 농업대책이다. 농민들은 제 값을 받아야하고 소비자들은 싼 값에 더 좋은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것이 유통구조개선의 목표라면 매점매석등 부도덕한 상행위는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생활이 볼모가 될 정도로 혼란을 가져와서는 안된다는것이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정숭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