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에 6·25전란으로 시골에 피란갔다. 나는 그곳 아이들에게 동물원의 원숭이같은 존재였다. 우선 입은 옷이 구경거리였고 말씨 역시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시골 여자애들은 치마저고리, 남자애들은 바지저고리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있었는데 나는 세일러복이나 털 스웨터에 멜빵바지 따위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도 한 반의 입성이 반반정도 섞여 있던 시절이어서 내 옷차림은 자랑거리였는데 시골 아이들에겐 「일본 뜨데기를 입은 이상한 아이」로 놀림감이 되었던것이다. 뜨데기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뜨더귀가 표준어이고 「조각조각으로 갈갈이 뜯어내거나 찢어낸 물건」이라고 낱말풀이가 되어 있다. 일부지방에서 수제비를 뜨덕국이라 하는 어원이 여기에 있나 보다. 조각조각 오려내어 박아대고 주머니를 붙여 만든 양복이 한복에 비하여 뜨더귀로 인식된것이고 일본옷은 곧 양복이라는 생각이 「일본 뜨데기」라는 말의 생성원인인 듯 싶다.
1세기전 19세기말 우리 선조들은 의복이나 문물이 서양화하는것에 반발하여 의병운동까지 일으킨 전통이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의관을 정제하는 외수(외양을 단정히 함)를 내수(마음을 닦아 수양함)만큼 중요시 하였다. 이러한 전통이 아직 강고하게 남아 있어 나를 놀려대던 그들도 이젠 점잖은 초로의 신사가 되어 양복과 넥타이를 자연스럽게 착용하고 그들의 아이들이 청바지에 T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실에 조금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것이다.
50년대에 미국 구호물자로 널리 퍼진 양복의 물결은 어느새 우리 복식문화에서 보편성을 획득하여 한복은 정초나 잔치등 특별한 날에나 입는 예복이 되고 말았다. 이제 양복은 평상복, 정장, 예복으로 차별화하면서 정착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진짜 「일본 뜨데기」같은 옷을 애용하고 있다.
새 청바지에 구멍을 내고 잘라내거나 탈색시켜 입는다든지 왜색풍의 너덜거리는 옷을 겹쳐입는 차림새가 유행하고 있으니…. 옷차림도 시대의 반영일진대 「일본뜨데기」를 즐겨 입는 젊은 세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것일까?<정옥자·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정옥자·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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