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중에는 김 한 톳을 사기 위해 경기분당에서 서울중부시장까지 가는 이가 있다. 그가 사는 동네에 시장이 없어서도 아니고 한푼을 쪼개 써야 할 궁색한 처지도 아니다. 순전히 밖에서 보내는 시간을 끌기 위해서이다. 그렇게까지 바깥바람을 쐬고 싶을 만큼 평소에 외출할 일이 없느냐 하면 그건 더군다나 아니다. 거의 하루도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을 만큼 분주한 친구이다. 살림만 하는 주부들도 오십대 이후엔 부쩍 바빠진다. 자식들을 학교 보내고 짝 지워주는 일의 어려움과 그런 일을 상부상조하는데서 비롯된 동창생 찾기가, 그런 일에서 놓여난 후까지 돈독한 친목으로 이어져 친목계를 만들기도 하고 수영이나 노래를 같이 배우러 다니기도 한다.
젊어서는 이름만 걸어 놓고 있던 교회의 각종 모임이나 행사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는 것도 그 무렵부터이고, 종교가 없더라도 힘을 모아 어려운 친구나 이웃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도 그 무렵부터이다.
김 한 톳을 사러 중부시장까지 다녀온 친구도 바로 그렇게 분주하게 살다가 어쩌다 하루 나갈 일이 없는 날이 생기면 그런 건수를 만들어서라도 바깥에서 하루를 보낸다. 집에 퇴직한 남편이 죽치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하고 같이 있으면 답답해서 숨이 막힐 것같아 자기라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가 집에서 꼼짝 안하는 것도 힘든데 잔소리는 또 왜 그렇게 하는지 더운 물이나 휴지 쓰는 것까지 일일이 간섭을 하는게, 사람이 경제력이 없어지면 저래지는구나, 슬며시 안된 생각이 들어서 친구라도 만나고 들어오라고 권하면 현역일 때 그 많던 친구는 다 어디로 갔는지 그것도 못 한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자식들 시집 장가 보내고 나서 친구가 부쩍 늘어나는 것과는 반대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은퇴를 하게 되는 남자들은 고립감에 시달리게 된다. 직장의 동료는 물론 직장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교제상의 친구는 은퇴와 동시에 소원해진다. 순수한 동창도 같이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이용을 하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섭섭하게도 하는 사이에 본래의 우정은 금이 가거나 찜찜해져 있게 마련이다. 또 은퇴를 하고 나면 아직도 현역인 친구는 찾아가기 싫은 자격지심같은 것도 생긴다. 별안간 구두쇠가 되는 것도 매달 들어오던 수입이 끊어지는데 따른 불안감이리라.
섣?R리 사업이라도 할까봐 퇴직금은 대개 아내가 관리한다. 아내는 퇴직금뿐만 아니라 젊어서 근검절약해 모은 목돈을 따로 갖고 있기도 하다. 늙은 아내는 또 아들 딸네서 아이를 봐달라, 손님 상 차리는 걸 좀 도와달라, 열불이 나게 불려갈 일도 많으니 자식들한테서 용돈을 탈 기회도 그만큼 많을 수 밖에. 그래서 마나님은 기분 내킬 때는 2만∼3만원짜리 점심도 아낌없이 먹지만 영감님은 어쩌다 바깥바람 쐬고나서도 칼국수를 먹을까 돌솥밥을 먹을까조차도 식성으로 정하지를 못하고 어떤 게 싼가 값으로 정하게 된다.
집에만 있는 영감님들 때문에 답답한 넋두리들을 하는 자리에서 젊어서부터 금실좋기로 소문난, 지금도 부부만 재미있게 사는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어느 날 며느리가 갈비를 재다가 냉장고에 넣어주고 갔다곗 한다. 효성도 기쁘고 갈비도 어찌나 맛깔스러워 보이는지 그것을 구우며 저녁상을 차리는 동안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더라고 했다.
알맞게 구워진 고기를 연방 식탁에다 날라다 놓으면서 포도주까지 곁들일 생각으로 식탁에 앉았다 섰다 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해가지고 식탁에 앉고 보니 그동안 영감님이 갈비를 한 점도 안 남기고 다 먹어치웠더라는 것이었다. 그때 마나님이 느낀 분노는 거의 살의에 가까웠노라고 고백했다. 그 집도 고기가 아쉬운 집은 아니니까 그의 분노는 남편의 무신경과 맛있는 것은 독식하도록 길들여진 구습에 대한 거였으리라.
홀로 되고 나면 부부해로하는 것처럼 부럽고 보기 좋은 것도 없다. 그러나 이렇듯 해로하는 부부의 행복하지만은 않은 사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자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늙을 날이 아직아직 먼 젊은 부부들을 위해서이다. 아내가 늙은 남편을 답답해 하고 부담스러워하거나 분노나 증오까지 하게 되는 것은 본인이 의식하든 안하든 간에 남자는 한때 홀로 자유롭고 홀로 좋은 걸 많이 즐겼으려니 하는데 대한 복수심같은 것에 연유하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남편 입장에선 이날 이때까지 뼈골빠지게 일해서 처자식 부양한 것외에 도덕적으로 큰 하자없이 산 끝이 고작 그거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젊어서 아내를 외롭게 한게 옳지 않다면 늙어서 남편을 비참하게 하는것 또한 옳지 않다. 부부간에 복수심은 더군다나 당치도 않다. 그러나 늘그막에 정반대로 뒤바뀐 부부의 위상이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된것은 아닐 것이다.
자녀에 대한 부모로서의 존재가치, 부부상호간의 경제적인, 성적인 필요성이 사라진 후까지도 부부를 서로 필요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를 전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내용이 공동의 취미나 관심사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서로 대등한 우정의 관계가 아닐까. 그러나 깊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우정이야말로 미리미리 쌓아가야지 급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작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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