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항상 미래의 서막인 것은 아니다. 역사는 갈림길에 놓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남아공이라는 비극의 무대에서 자신을 시험할 태세다. 이번 총선에서 만델라의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3세기에 걸친 백인통치를 종식시켰다. 반면에 인종갈등의 상처를 달래고 화해의 시간을 가지고자 총선 이전에 이미 흑과 백이 동의한 권력공유의 원칙 덕분으로 데 클레르크의 국민당과 부텔레지의 인카타 자유당은 각각 부통령직을 차지하고 내각에 참여할 「권리」를 확보해 놓은 상태다.
불신과 증오만을 알고 살아온 남아공의 세 정적이 이렇게 색다른 「동거」를 실험하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는 다시 한번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머리속에 그리고 희망을 걸어 보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것은 27년간의 투옥을 이겨내면서 젊은 시절의 큰 이상을 지켜온 만델라의 절개와 투혼만은 아니다. 인종차별 정책의 부당성과 무익함을 동시에 역설하면서 참정권을 확대시켜온 데 클레르크의 이성과 모험심 역시 평화적 체제개혁의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최대의 승자는 역시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다. 그것은 「근대」라는 역사적 단계를 남보다 일찍 시작한 서양에서 먼저 나타났을 뿐 서양문명 자체의 특질은 결코 아니다. 남아공에서의 선거혁명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미래가 밝기만 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수인 민족회의가 개혁에 대한 기대의 상승에 밀려 본래의 권력공유 원칙을 무시하고 보복에 나서면 남아공의 역사는 후퇴하고 말 것이다. 만델라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장악한 백인과 연대하여 흑인의 삶을 향상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한편 지난 4반세기 동안 남아공의 비극이 세계의 양심을 시험해 볼 때마다 우리는 딴전을 피웠다. 백인 정권에 대한 경제봉쇄의 문제를 놓고 세계 여론이 양극화할 때에 논의에 동참하려는 노력은 우리 정부와 사회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한국은 「남의 인권문제」에 관여할 만한 강대국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은 북한 벌목공의 인권에 마저 무감각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상대의 피부색이나 국력의 크고 작음을 기준으로 인권정책의 타깃을 설정하면 ― 즉 거스를 수 없는 원칙보다 상황과 편의의 차원에서 인권의 이상을 해석하고 실천하면 남아공의 흑인이라는 「남」의 인권은 고사하고 북한 벌목공이라는 「우리동포」의 인권조차 중차대한 문제로 비쳐지지 않는다.
인권은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라는 의식이 대중화할 날이 그리워진다. 인권문제에 「남」과 「우리」가 따로 있을 수 없을 때에야 우리의 인권을 절대시하는 새로운 미래가 서서히 펼쳐지기 때문이다. 역사의 갈림길에 놓인 것은 남아공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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