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언론인들을 접견한 클린턴미대통령은 사상 첫 흑백 자유총선을 실시하고자 하는 남아공의 「민주화 대장정」을 높이 평가했다. 클린턴대통령은 『남아공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보스니아 고라주데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과 비교할때 매우 경탄할 만한 일』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만약 남아공 총선이 예정대로 잘 치러진다면 이는 민족·인종 분규를 해결하는데 또다른 방법이 있음을 전세계에 입증하는 셈』이라며 『새로운 정권창출에 대한 남아공의 평화적 접근방식은 피비린내나는 다른 지역의 구식 영토분쟁을 정당화시키려는 논리에 쐐기를 박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클린턴대통령이 만난 언론인들은 요하네스버그 스타지 편집인 리처드 스테인, 소웨탄지 편집인 아그레이 클라스트 및 시카고 트리뷴지의 클레어런스 페이지 등이었다. 나 역시 이 회합에 초대받았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어 『예부터 민족·종교 분쟁을 겪어온 보스니아나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결국 자신들에게도 이익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19세기와는 달리 오늘날 영토를 통제·장악한다는 사실은 별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아공의 민주총선이 가능하게 된데는 『넬슨 만델라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이나 데 클레르크남아공대통령 등 영향력있는 인사들이 판을 깨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덕분』이라며 『이들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자유총선이라는 합의를 도출해냈다』고 지적했다.
만델라와 데 클레르크에 대한 클린턴의 평가는 간결 명료했다. 남아공 평화정착의 주역인 두사람은 『평화와 타협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들에게 강한 질타를 가했다』는 것이다.
클린턴은 남아공에 대해서 전문가적 식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흑백화합문제에 관해선 신명나게 얘기했다. 클린턴은 미국 역시 흑백인종 갈등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남아공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에서 태어난 그로서는 흑백간 부조화가 자신의 유년시절 의식세계를 지배했다고 회고했다. 어린 시절 클린턴은 흑백문제가 『자신의 힘으로 풀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해결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다.
때문에 그가 정치에 눈 뜨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것중 하나가 인종차별 문제이다. 이와 관련, 그는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인종차별에 대해 본격적으로 반대운동을 벌이면서부터』라고 회고했다.
그는 그러나 『불행히도 편협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인종차별을 이용,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하며 순진한 보통사람들을 좌절시켜왔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사회의 경우는 어떠한가. 인종차별의 암영은 과연 완전히 자취를 감췄는가. 불행히도 아니다. 아직도 2세 미만의 어린이들중 약 36%는 방역주사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대다수는 물론 흑인아이들이다.
클린턴의 주장대로라면 남아공과 같은 다인종사회는 「세계경제의 훌륭한 자산」이 될수 있다. 즉 경제발전의 잠재력이 단일사회보다 뛰어나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동등한 수준의 교육과 보건제도등 사회 제반조건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지금 지구에는 두종류의 사회가 존재한다. 하나는 일본과 같이 동일한 문화·민족으로 이뤄진 사회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처럼 다민족사회이다. 하지만 두종류의 사회 모두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전자는 효율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만 다양성이 없다. 후자는 개방적이지만 범죄가 빈발하는등 사회기강이 엉망이다.
이제 남아공은 이 두사회를 섞는 미증유의 실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때를 맞기 위해 만델라 의장은 27년간을 감옥에서 지내야했다. 오랜 수감생활 동안 그는 모두를 파괴할 쓰라린 복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극기의 수련을 거쳤을 지도 모른다.
데 클레르크대통령 또한 3백50년간 유지해온 동족 백인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라고 설득하는데 말못할 고뇌와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용단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두사람의 합작으로 이뤄낸 남아공 흑백총선의 위대함은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사악한 민주주의의 적을 제도적으로 영원히 추방할수 있게 된 점이라 할 것이다.【정리=김영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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