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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진압 당일까지 군설득 진땀”/옐친 의회유혈사태 회고록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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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진압 당일까지 군설득 진땀”/옐친 의회유혈사태 회고록펴내

입력
1994.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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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지도자들 권력에 눈멀어/나는 어려울때 강해져… 평소엔 멍청”/최고회의 진행과정은 집단 광란/질서회복 위해 채찍사용 불가피/고르비 소연방지속 노력이 불행시작 보리스 옐친러시아대통령이 최근 지난해 10월4일의 의회유혈사태등을 진솔하게 기록한 회고록을 냈다. 작년 3월 사망한 어머니에게 바친 이 회고록은 러시아어로「대통령의 노트」,독일어로 「백척간두에서」라는 제목으로 오는  10일 러시아를 비롯한 30여개국에서 동시출판된다. 옐친대통령은 이 책에서 한때 삼총사로 불릴 정도로 가까운 정치적 동지였으나 나중에 자신에게 반기를 든 루슬란 하스불라토프(당시 최고회의 의장)와 알렉산드르 루츠코이(당시 부통령)를 권력에 눈이 멀었던 사람들이라고 통박하는가 하면 대통령으로서의 고뇌를 토로하기도 했다.책의 주요내용을 소개한다.

 93년 10월 3일과 4일에 있었던 사건은 불행한 시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4일 아침 5시 대통령 직속 특수부대인 「빔펠」과「알파」부대의 지휘관 30명을 만나 2차례나 직접 공격명령을 내렸지만 지휘관들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들 부대는 의회건물 5백앞에 포진한 채 움직이지 않다가 의사당에서 저격수가 지휘관중 한명을 사살하자 의회진압에 나섰다. 3일밤에도 고위 군장성들에게 모스크바로 출동할 것을 명령했으나 꼼짝하지 않아 국방부로 직접 찾아가 장성들을 설득했다. 당시 TV에 나가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는 방송을 못한 것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군장성들과 논쟁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건이 있기 1년전인 92년 11월 6일밤 크렘린궁에서 5시간동안 하스불라토프와 만났다. 하스불라토프는 내내 파이프를 피워댔다. 각자가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나야 직책상 그럴 의무가 있었지만 그는 천성적인 명예욕 때문에 그랬다. 그는 내게 대들면서 위협했다. 차츰차츰 조여들면서 나를 물러서게 하고 잘못을 인정하도록 강요하려 했다. 우리가 언젠가 한판 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지난해 3월 20일 나는 국민에게 호소했다. 밤 9시에 내 연설이 TV에 나간지 3시간만에 루츠코이부통령, 유리 보로닌최고회의부의장, 발레리 조르킨헌법재판소장이 함께 화면에 나왔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대통령에게 전쟁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장광설은 의회를 소집해서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루츠코이와 조르킨은 정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나를 공격했다. 그러나 목적은 권력을 잡는 것이었다.

 나는 상황이 어려워지면 강해진다. 반면에 보통때는 오히려 굼뜬 편이다. 때로는 지배력을 완전히 상실하기도 한다. 그것도 아주 멍청하고 유치하게. 이것은 분명 나의 약점이다.

 최고회의에도 똑똑한 인물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한 방에 1천5백명이 모인다는 것은 의회가 아니다. 그저 대중의 집합이다. 여기서는 목소리 큰 자가 이긴다. 어떤 결정에 도달하기란 끔찍히도 어렵다. 분파도 무수하고 게다가 수백명의 무소속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집단간의 싸움과 야심의 장이다. 이런 의회라면 나라를 이끌 수 없었다. 의회에서 진행되는 과정은 집단광란이었다. 이미 혁명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혁명은 동시에 피의 냄새를 부르는 법이다. 의회는 모든 정치·경제적 문제를 자기 관할 아래 둘 것을 요구 했다. 이는 내가 제안한 변화의 대부분이 거부됐다는 의미다.

 러시아에는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그러나 질서가 없다. 질서는 채찍을 들어야만 쉽게 회복할 수 있다. 기율이 없기 때문에 기계전체가 안돌아가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나라에서 한 사람은 모든 것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공군대장인 루츠코이를 부통령에 발탁한 것은 선거전술 때문이었다. 중년여성들은 루츠코이를 보면 열광할 것이다. 그리고 군대의 표도 서서히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경건하고 고귀한 척하면서 기실은 전력을 다해 대통령 자리를 노렸다.

 내가 공산주의를 파괴했을 때 나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고르바초프를 뒤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처음에는 소련공산당을, 그리고 나중에는 적어도 소연방을 구하려 했기 때문에 불행과 위험이 시작됐다.【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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