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개혁보다 보수성향 띨듯/흑인생활개선 기대충족 과제 26∼28일 실시된 최초의 흑백 자유총선으로 사실상 남아공의 3백42년 백인통치가 합법적으로 종식된 셈이다. 30일부터 시작된 개표결과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압승이 확실해졌으며 데 클레르크 백인대통령의 국민당은 제2당이 되게됐다.
만델라는 5월6일 개원할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데 클레르크는 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은 정치테러와 폭력이 크게 우려됐으나 백인극우파에 의한 일부 테러를 제외하고는 기대이상으로 순조롭고 공정하게 치러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는 어느 정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선거관리위원회(IEC)의 노력이 컸다.
백인극우정당이 선거에 불참했으나 최근 4년간 테러를 야기한 인카타자유당(IFP)이 투표직전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선거의 유효성을 둘러싼 선거후 정국불안의 우려도 일단 훨씬 줄어들었다.
이번에 선출된 4백명의 하원의원은 5월6일 입법수도인 케이프타운에서 의회를 개원하고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한다. 대통령은 5월10일 취임한다.
만델라 신정권을 흑인정권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지난해 12월 채택된 잠정헌법은 제1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제1당과 제2당이 부통령직을 배분하게 돼있다. 또한 5% 이상 득표 정당을 내각구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만델라 신정부는 거국연립내각적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만델라 신정부의 과제는 기존 국민당 세력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나가며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제도권내에 들어온 흑인들의 강한 욕구와 기대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달려있다.
만델라 정권은 기본적으로 데 클레르크 백인세력의 협조를 얻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투쟁에 의한 혁명정부가 아니며 협상과 타협을 거쳐 탄생한 정권이다.
따라서 만델라는 기존의 체제와 정책을 완전 부인하는 급격한 개혁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적인 색채를 어느정도 띨 수밖에 없다.
구백인정권의 국가운영 방식과 기존의 백인 테크노크라트의 체계 안에서 점진적 개혁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만델라는 급격한 개혁이 야기할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대립이 단시일내에 치유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생활의 개선과 정치·사회·경제적인 참여, 일자리와 교육의 기회를 원하는 대다수 흑인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정책변화가 예상된다.
여기에는 백인소유의 농토와 토지를 싼값에 매입하고 국가소유 유휴지와 군용지를 흑인들에게 분배하는 토지개혁과 공공사업재원을 위한 세제개편, 기업들의 흑인 일정비율 고용을 의무화하는 고용법 제정등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남아공 정국의 변수는 10% 안팎의 득표가 예상되는 부텔레지가 이끄는 IFP의 향방이 중요한 요인이 될것으로 분석된다. 만델라와 오랜 경쟁관계인 부텔레지는 데 클레르크와 정치적으로 연합, 만델라를 견제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ANC내의 변수는 공산당세력이다. 이번 선거에서 ANC와 연합한 공산당세력이 급진적이고 사회주의적인 개혁노선을 요구할 경우 ANC는 분열될지도 모른다. 공산당은 50번내 전국구후보중 절반을 차지했다.
만델라의 개혁이 빠른 시일내에 대다수 흑인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소요의 가능성은 있으나 만델라외에는 구심점이 없다는 점에서 대규모 흑인폭동의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단지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백인극우세력의 테러가 어느정도의 정치·사회불안을 계속 야기시킬 것 같다.【요하네스버그(남아공)=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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