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에게 연락할일이 있어서 전화를 걸어본 사람들은 주부들과 통화하기가 매우 어렵다는것을 알고있을것이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주부들은 부재중 일때가 많다. 세탁기와 청소기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주부들은 더 바빠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뭔가 배우러 다니는 주부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십여년 사이 여성생활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것 중의 하나는 사회교육의 확대다. 중년여성들이 여가를 어떻게 보낼지 몰라서 고민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이상 신문·잡지의 기삿거리가 아니다. 적어도 도시 근교에 사는 여성들은 의욕만 있다면 원하는것을 큰 부담없이 배울수 있게 됐다.
여성단체, 언론기관, 백화점, 호텔등은 앞을 다투어 여성을 위한 특강들을 내놓고 있다. 외국어, 컴퓨터, 문학, 그림, 서예, 주역, 에어로빅, 단전호흡, 공예, 요리, 노래교실등 온갖 흥미로운 특강들이 마련돼 있다. 한국일보안에도 문화센터가 있는데, 몇년동안 문화센터에서 계속 공부하는 낯익은 주부들은 어느덧 아마추어를 넘어 프로의 티가 나기도 한다. 실제로 문학교실을 거쳐 작가로 데뷔하거나 그림, 서예를 배운후 이름난 공모전에 입상하는 주부들도 많다. 그러나 이것저것 계속 배우면서도 흥미와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중년이후 찾아드는 무력감과 허무함을 달래려고 문화센터를 찾는 주부들은 많지만, 모두가 만족하는것은 아니다. 평생 즐길수있는 취미나 특기를 익히는것 자체가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것이므로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는 적성에 맞는 공부를 찾기가 더 힘들다.
작년 연말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한 주부를 알고 있는데, 그는 요즘 피아노 배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다. 이미 수필가인 그가 피아노를 배우기로 한것은 『찬송가를 쳐보고 싶어서』였다. 그는 또 훗날 아들들이 분가한후 쓸쓸해지거나 부부싸움을 하여 속상할때, 더 늙어서 친구들이 모여 노래하고 싶을때 피아노를 칠수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네 어린이들과 함께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그는 드디어 적금을 해약하여 1백만원짜리 중고 피아노를 샀고, 하루에 두시간씩 열심히 피아노를 친다고 한다. 『… 지금 겨우 바이엘 백번을 치고 있지만, 피아노에 앉으면 전에 몰랐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슴뛰는 기쁨을 맛본다』고 그는 자랑하고 있다.
그는 경기도 고양군 숲속에 살고 있는데, 40대 주부의 서툰 피아노 소리가 빛나는 신록사이로 울려퍼지는것을 상상하면 우리도 기뻐진다. 중년이후 여성들의 삶에서 고독을 수용해 나간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멋진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중년여성은 「인생의 황금기」에 많은 수확을 거둘수있도록「고독」을 멋지게 관리해야 한다. <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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