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 9시30분 의장실회동후 “결렬”발표 상무대 국정조사계획서의결을 위해 소집된 이번 임시국회가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것으로 최종 확정된 시각은 28일 하오 9시30분이었다. 이 시각 굳게 닫혀있던 의사당 2층의 국회의장실문이 열렸고 이한동민자·김태식민주총무가 50여명의 보도진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총무는 허탈한 듯 오히려 웃음을 지었고 김총무는 굳은 표정으로 1층 자신의 방으로 곧장 내려갔다.
이총무는 보도진들이 회담결과를 묻자 담담한 어조로 『고별만남을 한지 한참됐다』는 우회적 표현으로 결렬사실을 알렸다. 그는 『이 자리는 이의장께서 10시이후에 총리임명동의안과 국무위원해임건의안을 모두 본회의에 직권상정할것임을 양당에 통보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최대쟁점이었던 증인채택문제에 대해 이총무는 『증인은 법사위 소관이지 원래 우리(총무들) 소관이 아니다』며 협상은 끝났음을 선언한 뒤 민자당 의총에 참석했다. 이 순간 김총무는 협상결과를 묻는 보도진에게 『안될 겁니다』라는 말만 남긴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장에 들어갔다. 여야총무들이 퇴장한 뒤 이의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미리 준비해 놓았던 「직권상정에 즈음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처럼 협상이 결렬에 이르기까지는 최종회담을 포함해 모두 7차례의 총무회담이 있었다. 상오9시50분께 국회운영위원장실에서 첫 만남이 이뤄진 이후 의원회관의 김총무방등 여러 곳이 협상장소로 이용됐다. 회담마다 두 총무사이에 치열한 줄다리기와 신경전이 이어졌다. 협상의 최고고비는 하오5시30분부터 1시간여동안의 4차접촉과 하오8시30분께부터 20여분동안의 5차접촉. 4차접촉에서 여야는 서로의 「최종 마지노선」을 탐색했다. 여기에서 야당은 당초의 「김영삼대통령을 제외한 50명의 증인 참고인 채택」요구에서 한걸음 물러서 다소 융통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감지한 이총무는 곧장 여당수뇌부와의 협의를 거쳐 「전육참총장등 6공인사 4명 참고인 채택 동의」카드를 여당의 최후양보선으로 5차접촉에서 제시했다. 그러나 이안은 이기택대표의 호의에도 불구, 민주당최고위원회의에서 거부됐다. 김총무는 이같은 민주당의 입장을 하오 9시10분께 잠깐 이뤄진 6차접촉에서 통보해 사실상 협상을 결렬로 결론지었다. 이 만남이 이총무가 의장실회담이 끝난뒤 밝힌 사실상의 「고별만남」이었다. 야당의 융통성없는 「9인9색」의 복잡한 당내역학구조가 국정조사작성계획서협상의 해피엔딩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신효섭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